경기옛길/삼남길 81

지지대비

지지대(遲遲臺) 명칭의 유래지지대(遲遲臺)라는 명칭은 정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 유래와 관련해 정조의 애끓는 효심을 엿볼 수 있는데, 다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어가가 사근현(沙斤峴)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잠시 쉴 때에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내가 본래 가슴이 막히는 병이 있어 궁궐을 나올 때에 꽤 고통스러웠었는데, 이제 다행히도 배알하는 예를 마치고 나니 사모하는 마음이 다소 풀리어 가슴 막히는 증세도 따라서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게 되었으니 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이 지역은 바로 수원의 경계이다. 말에서 내려 머무르며 경들을 불러 보는 것은 대저 나의 행차를 지연시키려는 뜻이다.” 하고, 인하여 그 지역을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命名)하였다.  1792년(정조 16) 1..

박정희 대통령 식목일 기념 조림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의왕시 왕곡동 오봉산 골사그내 주변에 지난 1974년 1.7㏊에 밤나무 심기를 시작으로 1976년과 1977년에도 각 2.4㏊와 1.2㏊에 밤나무와 잣나무를 조림하는 등 세 차례 직접 식수와 함께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고 식목운동을 대대적으로 장려했다. 이 바위가 식목일 기념비? (kgnews.co.kr)  이 바위가 식목일 기념비?박정희 전 대통령이 식목운동을 장려하며 세 차례나 직접 나무를 심은 의왕시 왕곡동 오봉산 일원 기념조림지에 세워진 기념비가 수십년째 관리없이 흉물로 방치돼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www.kgnews.co.kr

사근핸궁터

사근행궁터22대 정조가 부왕(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잠시 쉬어가던 곳 "의왕시 고천동 272-2번지에자리잡고 있는 사근행궁터는 조선조 효도대왕으로 일컬어질 만큼 효성이 지극했던 22대 정조가 부왕(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이곳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는데 효심이 지극한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서 부왕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성으로 이장하던 1789년 10월 6일 상여가 이곳에 이르자 마중한 이곳 노인들에게 경기감사로 하여금 쌀을 나누어 주게 하고 행궁을 지으니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이라 하였다. 정조는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이곳에 들렀는데 특히 1795년 2월 10일과 15일에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함께 들러 수라(식..

왕림마을

왕림마을의 유래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화산 현릉원에 모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융릉을 참배할 때마다 사근행궁(현 의왕시청 별관)에서 쉬었다가 지지대고개를 넘어 원행 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왕곡동의 왕림은 바로 정조대왕이 능행할 때 이곳에 "왕께서 임하시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왕이 임하신 곳' 즉 '왕림' 이라고 해야 하나 사사로이 '왕' 이란 한자를 사용할 수 없어서 같은 음인 '왕'으로 고쳐 지금의 '왕림' 이 되어 전해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고천. 오전. 부곡지역은 조선후기 이래 왕륜면에 속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왕림마을 지역은 '내왕륜'이라 하고 사람들은 왕님 이라 불렀다. 즉 '왕륜> 왕뉸〉 왕님 또는 왕림'으로 음운변천과 불확실한 발음 전달이 ..

청품김씨 묘문비

청풍김씨 묘문비의왕시 향토유적모문비는 묘역의 입구에 건립하는 비석으로 일반적으로 '묘산비'라고 하며,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은 10기 내외로 매우 적은 수가 제작되었다.청풍김씨 묘문비는 백운산 일대에 자리 잡은 청풍김씨 묘역 입구 길가에 있으며, 도시개발로 몇 차례 위치를 옮겼다. 이 비석은 김치인이 선조들의 묘역과 석물을 정비하던 1760년대에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묘문비는 지붕돌, 비신,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4면의 너비가 같은 사면비의 형태이다. 지붕은 목조가옥 형태를 모방해서 제작하지만 이 묘문비는 매우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18세기 비석의 특징을 보인다. 비석 앞뒤에는 '청풍김씨묘문' 이라고 큰 글씨를 새겼으며, 이 글씨는 18세기 청풍김씨 가문에서 비석에 집자해 사용하던 석봉 한호의 ..

모락산 둘레길 종합안내판

모락산 전설모락산 정상에는 한성기 백제시대에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했던 산성터가 남아있다. 모락산이란 지명은 임영대군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자 임영대군은 이곳으로 피신해 살았는데, 산 아래 초막을 짓고 매일 높은 봉우리 큰 바위에 올라 망궐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은 한양을 그리워하고 조선을 걱정하던 임영대군을 기리며 모락산이라 하고, 그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지었다.갈미한글공원갈미한글공원은 의왕시 청계동 양지편에서 태어난 한글학자 이희승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글 조형물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쉼터로 손끝에 조성한 공원이다. 주변에는 6.25 당시 모락산 전투에서 전사한 한국군의 넋을 위로하고 나라사랑 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조성된 평화의 쉼터가 있다. 갈미는..

오전리교회

오전리교회오매기마을에 기독교가 정착하는 데는 '오매기 골짜기에 핀 최초의 꽃' 전도부인 흥길순 여사에서 비롯되었다. 흥길순 여사는 마을에서 20여리나 떨어진 수원읍성결교회까지 걸어다녔다. 오전리교회 기독교 역사에서 홍길순 여사는 "오전리교회의 첫 번째 믿음의 꽃"이었다. 신도수가 늘어나면서 1937년 6월 10일 유근풍의 집에 예배소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오전리교회의 시작이었다. 1938년 유창희의 헌금을 기반으로 교회를 짓기 시작하여 4개월만에 신축을 마치고 1939년 6월 5일 오전리 교회 헌당식을 가지면서 독립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교회의 정식 명칭은 "조선(화) 야소교 동양선교회 오전리교회"였다. 신도수가 너무 많아 첫 교회 바로 위에 교회를 새로 짓고 원 교회는 목사의 사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