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삼남길

왕림마을

나들나들 2024. 6. 26. 22:16

왕림마을의 유래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화산 현릉원에 모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융릉을 참배할 때마다 사근행궁(현 의왕시청 별관)에서 쉬었다가 지지대고개를 넘어 원행 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왕곡동의 왕림은 바로 정조대왕이 능행할 때 이곳에 "왕께서 임하시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왕이 임하신 곳' 즉 '왕림' 이라고 해야 하나 사사로이 '왕' 이란 한자를 사용할 수 없어서 같은 음인 '왕'으로 고쳐 지금의 '왕림' 이 되어 전해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고천. 오전. 부곡지역은 조선후기 이래 왕륜면에 속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왕림마을 지역은 '내왕륜'이라 하고 사람들은 왕님 이라 불렀다. 즉 '왕륜> 왕뉸〉 왕님 또는 왕림'으로 음운변천과 불확실한 발음 전달이 이뤄지면서 왕림으로 굳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왕림마을은 중종의 정국공신 김우중의 후손으로 영• 정조대에 6정승을 배출한 청풍김씨의 세거지이다. 마을 입구에는 '청풍김씨묘문비' 와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는 삼남의 관찰사들은 물론 대소 관원들이 부임 인사를 위해 노재상에 안부를 묻거나 묘소를 참배한 때 마을 입구의 하마석에서 반드시 하마하고 걸어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한 표석이었다.

묘문비는 현재의 왕림마을 입구에 옮겨 세웠으나 하마비는 1977년 홍수 때 사라져 지금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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