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삼남길 81

오산 금암리 지석묘군

오산 금암리 지석묘군 烏山 錦岩里 支石墓群경기도기념물 제112호 은 수목원로 일원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잘생긴 바위가 많아 ‘금바위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석묘는 모두 11기가 확인되었으며, 이 중 9기가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호 덮개돌은 부정형으로 장축은 동-서방향이다. 2호 덮개돌은 타원형에 가까우며, 장축은 동-서방향이다. 상면에는 성혈 및 채석흔이 일부 확인된다. 3호 덮개돌은 장타원형이며, 장축은 동남-서북방향이다. 4호 덮개돌은 부정형이며, 장축은 동-서방향이다. 5호 덮개돌은 장타원형이며, 장축은 북동-남서방향이다.  6호 덮개돌은 방형이며, 장축은 동남-서북방향이다. 7호 덮개돌의 장축방향은 동북-서남이며, 8호 덮개돌은부정형이며, 장축은 동-서방향이다. 덮개돌의 북쪽과 ..

애기바위

제7길 독산성길 애기바위임진왜란의 비극이 만든 이야기자식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슬픈 이야기 임진왜란은 조선시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중에서도 오산시 금암동의 애기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특히나 가슴 아픈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왜군이 오산시 금암동으로 들어와 마을을 공격했을 때 발생한 일로, 왜군은 이 마을의 지형이 중요한 인물이 태어날 곳임을 알고, 아기와 임산부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잔학한 명령으로 인해 한 부인은 자신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바위 밑에 감추려 했지만, 울음소리가 들린 왜군은 냉혹하게 바위를 톱으로 자르며 아이를 살해했습니다.이 비극적인 사건은 임진왜란의 잔학함과 인간적인 비인도적 행위를 상기시키는 사건으..

독산성과 세마대지

오산독산성과 세마대지  - 지정 : 국가사적140호 - 위치 : 경기도 오산시 독산성로 일대(오산시 지곶동 155) 둘레 1,095m의 성이며, 2019년 발굴조사로 삼국시대 신라가 돌로 쌓은 석축산성 으로 새롭게 확인되었으며,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에는 토성으로 추정되며, 조선 선조 27년(1594년 임진왜란 중)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수축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 35년(1602년)에 방어사 변응성이 석성으로 수축하 였다. 정조 16년에는 약 70일간 신축에 가까운 대규모의 수축을 진행했고, 이후에 도 지속적으로 독산성에 대한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축성 기법은 성의 높이가 높지 않아 수직에 가까운 각도를 주어 축석되었다. 수구 2개, 우물 1개가 있다. 독산성에는 우리 ..

삼남길 제 7길 독산성길

독산성길(세마교 ~ 은빛개울공원)독산성에 올라 주변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세마교를 지나면 독산성에 오르게 됩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권율장군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독산성에서는 주변을 한눈에 살필 수 있습니다. 독산성의 또 다른 자랑인 백제고찰 보적사와 삼림욕장을 지나서 계속 길을 가다보면 금암동 고인돌공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금암동 고인돌은 한강 이남에 처음 무리지어서 발견된 고인돌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경기옛길 (ggcr.kr)  경기옛길경기옛길 - 역사문화탐방로 경기옛길 소개, 도보여행, 역사, 문화유산, 운영프로그램 등 정보 제공.ggcr.kr

만년제

제6길 화성효행길 만년제사다리꼴 모양 저수지의 역사와 기능 관심과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유산 만년제의 복원작업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만년제는 정조 시대에 조성된 인공 저수지 중 하나입니다. 만년제는 다른 저수지와는 달리 사방에 제방을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독특한 사다리꼴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저수지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과 기능으로 인해 만년제는 주변 지역의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융릉의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만년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모습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고유한 문화유산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만년제의 역사와 기능, 문화적 가치 등을 되새기며 복원작업을 ..

용주사

제6길 화성효행길 승무용주사와 시인 조지훈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얇은 사 하이얀 고갈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한국의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조지훈의 "승무"는 그의 창작 과정과 작품의 의미로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조지훈은 1939년에 서울 혜화전문학교에서 공부하던 중에 용주사에서 큰 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고 용주사를 찾아가서 "승무"라는 무용을 관람하게 됩니다.이 무용을 보고 느낀 감동과 여운은 그의 내면에서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감동을 시로 표현하고자 결심했는데 그 중 "얇은 사 하이얀 고갈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구절은 시의 핵심이자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낸 핵심 구절이었습니다."승무"는 조지훈의 민족적 정체성과 민중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