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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춘(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 마곡사 소개글 中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태화산마곡사 사적입안』(1851년)에는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 후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세운 7대 가람 중 세 번째 사찰로 창건 이후 다섯 번의 중수(重修)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양종대본산마곡사 연기략초』 에서는 “보조선사 체징이 마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범일국사, 도선국사가 확장과 중수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신록축제가 열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은 수행 공간인 남.. 2026. 8. 8.
웅진백제를 지킨 왕성 공주 공산성 금강변에 있는 야산과 계곡을 둘러쌓은 백제 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이다. 원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돌을 쌓아 석성으로 고쳤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웅진성으로 불렸지만 고려 시대 이후로 공주산성 또는 공산성으로 불렸다. 538년(성왕 16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주 공산성은 조선시대까지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실제로 성 안에선 백제의 기와와 토기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유물들도 많이 출토되었다. 또한 이곳은 역사의 주요 장면들이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머물렀고,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가 되기도 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엔 김헌창의 난(822년)이 일어났었다. 조선 시대에 이괄의 난(1623년)이 일어나자, 인조가 잠시 피난을 온 적도.. 2026. 8. 8.
백제 고도의 길이란? 공주, 부여, 논산, 익산 - 마음을 울리는 한국의 미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백제는 한강을 통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주변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는 건 외래 문물을 빨리 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정학적 이점을 이용하여 선진문화를 받아들인 백제는 이를 바탕으로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 문화는 다시 주변국으로 흘러가 스며들었다. 고대 동아시아 문명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백제는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세 차례의 천도까지 감행했음에도 660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당하고 말았다. 찬란했던 고대국가는 크고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있지만, 백제는 우아하고 세련된 석탑에서부터 화려하고 정교한 금속공예품, 간결하고 실용적인 토기와 기와에 이르는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2026. 7. 18.
성북구 성북로 26길 8 (상허 이태준 가옥) 상허 이태준 가옥지정번호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유산 / 시대 : 1933년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48번지이 집은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집필한 곳이다. 이태준은 이곳의 당호를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 하고, 李泰俊 문학의 產室(1904.11.4 ~ ? ) 이 집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常虛 이태준이 1930년대부터 살면서 글을 쓰던 聞香樓이다.근대 순수문학의 기수인 그는 달밤, 돌다리 등 주옥 같은 단편집과 여러 장편 외에 수필집 無序錄과 명저 文章講話를 남겼다.상허 이태준호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수학하였으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오몽녀(五夢女).. 2025. 10. 13.
성북구 성북로 15길 9 (최순우 옛집)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 시대: 1930년 대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5길 9 이 집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혜곡은 개성에서 출생 하였고, 본명은 희순이다.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개성부립 박물관장이던 고유섭 선생과 만난 계기로 박물관에 종사하며 미술사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평생을 한국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전통의 현대적 전승, 해외 소개에 바치면서 전시와 저술을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 을 역설하였다.이 집은 1930년대 지은 근대 한옥으로 평면은 'ㄱ자형' 안채와 'L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며 ㅁ자를 이루되 모서리가 트여 있는 '튼ㅁ자형' 이다.. 2025. 10. 12.
성북구 성북로 131 (성북동 이종석 별장) 성북동 이종석 별장조선시대 말기 마포에서 젓갈 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1900년 경에 지은 별장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로 성북동 서쪽 산자락에 위치한 이 집은 마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석이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한옥이다. 우물이 있는 바깥마당을 지나 일각문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행랑채, 오른편에 본채가 있다. 행랑채는 특이하게도 ㄱ자형으로 일반적인 가옥의 공간 구성이다. 행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원래 담장이 놓여 있었는데, 여기 난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드나들도록 되어 있었다. ㄱ자형의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누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안방을 두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옥에서 볼 수 있었던 누마루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조선 말기 신분에 따른 주거 형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모.. 2025.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