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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현관아지와 온온사

온온사 조선시대 인조 27년(1649년)에 지어진 과천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를 모셔놓은 곳으로, 일정한 날짜에 임금이 계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외에도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나라의 일을 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객사는 고을의 수령이 일을 하는 동헌보다 더 지위가 높다. 그래서 고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며 건물도 정성을 다해 지었다.온온사는 정조임금께서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머물며 붙여주신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정청(政廳) 3칸이 중앙에, 좌우로 동·서현이 각각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청 부분 지붕을 동·서현보다 약간 높게 지은 전형적..

파주 윤관 장군묘

윤관(尹瓘, 1040년 7월 12일 (음력 6월 1일) ~ 1111년 6월 15일 (음력 5월 8일[1]))은 고려 중기의 문신·군인이다. 숙종, 예종 때 여진족 토벌에 출정하였다. 본관은 파평, 자는 동현(同玄)[2],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처음 시호는 문경(文敬)이었으나 뒤에 문숙(文肅)으로 개시되었다. 파평 윤씨의 시조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의 4대손으로, 아버지 윤집형(尹執衡)은 검교소부소감(檢校少府少監)을 지냈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없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숙종 때 2차 여진족 토벌 당시는 원수로 출정하였으나 실패, 강화회담을 하고 되돌아왔다. 이후 특수 부대 별무반을 창설하여 오연총과 함..

도라지

산수유 나무 아래서 - 곽재구꽃뱀 한 마리가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바람이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망울을 차례로 흔드는 동안꼭 그만큼의 설레임으로 당신의 머리칼에 입맞춤했습니다그 순간, 내 가슴 안에 얼마나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지얼마나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지......사랑하는 이여, 나 가만히 노 저어그대에게 가는 시간의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웁니다바로 곁에 앉아 있지만너무나 멀어서 먹먹한 그리움 같은언제나 함께 있지만 언제나 함께 없는사랑하는 이여,꽃뱀 한 마리 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습니다.

윤관원수숭모시비공원

拓地鎮國功臣門下待中文肅公尹罐大元帥崇幕詩碑公園뽕잎은 누에를 길러추위를 막게하고가지는 굳센 활이 되어오랑캐를 쏜다이름은 비록 초목일지라도참으로 국보로다자르거나 꺽지 못하게아이들을 훈계하리 관외에 영울받든후 오래적조하였소 천은이 망극해서 그중에도 사명을 다 햇소이다.나에게 성심 있는 자 있어 간혹 승당시처렁주연을 베풀어 영화롭기하니 이 또한 천은이거늘이제 마침 영감이 윤경과 더불어 온다하니 분에 넘치는구려영일에 윤경과 같이온다함은 들랑없이 나의 벗이 되려하나주연을 베풀어 나이 많은 늙은이를 위로한다항 함은틀림없이 아주저버리지는 아니함이로세거듭바라는 바 절..하오경백관추모시종[1079-1122, 고려16대왕(제위] 105~22)]丙成年中有虜塵 병술년 도적떼를 사로잡고 물리치려干戈深入漢水濱 내달아 전쟁은 한강 수..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용미리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보물 제93호로 지정된 이곳 용미리 석불입상에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려시대 중기 13대 선종(재위 1083-1094)은 자식이 없어 셋째 부인인 원신궁주 이 씨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아이가 생기질 않았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의 꿈속에 어느 날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이오. 배가 매우 고프니 먹을 것을 주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는 이 내용을 왕께 아뢰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왕은 즉시 이 바위에 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리도록 하였더니 그 해에 원신 궁주에게는 태기가 있었고, 왕자인 한산..

용암사

쌍미륵길 스탬프에서 용암사로 오르는 계단장지산용암사 대웅보전용암사 지정 : 전통사찰 제87호 지정일 : 1988년 10월 25일 시대 : 고려시대(1840년 재건) 소재지 : 광탄면 혜음로 742-28  용암사는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에 위치한다. 고양시 벽제관에서 광탄으로 향하다 혜음령 고개를 넘으면 국가 보물 제93호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다. 언제부터 이곳에 가람에이 형성되었는 지 알 수 없지만. 전설에 의하면 고려 제13대 선종I., 1083~1094 때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조성한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어 약 900 여년 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만들어진 11세기를 창건연대로 잡고 있다. 조선시대는 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전란에 의하여 한동안 절이 소실되 었고, ..

의주길 제 3길 쌍미륵길

의주길 제 3길 쌍미륵길 (파주혜음원지 ~ 신산5리)의주대로의 이정표, 쌍미륵을 지나는 길쌍미륵길은 조선시대 의주대로의 78번 도로를 곁에 두고 걷는 길로, 파주의 작은 마을을 지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쌍미륵길에서 만날 수 있는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은 ‘쌍미륵’으로 불리는 불상으로 17.4m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입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을 지나는 길손들은 쌍미륵을 이정표 삼아 길을 잡았습니다. 오늘날의 길손들 역시 멀리 쌍미륵을 바라보며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용암사에서 머지 않은 곳에서 고려시대의 명장 윤관장군의 묘를 지날 수 있는데, 기세등등했던 청나라 사신들도 여진족을 물리친 윤관 장군의 묘를 지날 때는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