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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길 망우왕숙길 (이문안호수공원)

구리시 여성행복센터구리아트홀구리시청이문안호수공원제1길 망우왕숙길 이문안호수공원구리시청과 구리아트홀 맞은편에는 '이문안호수공원'이 있습니다.예전 '이문안저수지, 혹은 '안골저수지'라고 부르던 저수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구리시의 명소가 되었지요. '안골저수지'는 망우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어 이문리 안골마을에 있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45년에 만들어졌습니다.안골저수지는 당시 각종 채소와 먹골배 등의 과수를 재배하던 주민들에게는 필수적인 시설이었지요.하지만 구리시가 도시화되어 농경지가 택지로 바뀌면서 더 이상 농업용수를 공급할 필요성이 없어지며 안골저수지는 찬밥신세가 되고 맙니다.그래서 1970년 대에는 유료 낚시터로 이용되기도 하다가 1980년대 초반에는 주택가에서 흘러드는 오수와 폐..

제1길 망우왕숙길 (유관순 열사, 이태원묘지 무연분묘합장비 그리고 노고산천골취장비)

유관순 열사 (1902~1920 독립 운동가)내 손톱이 빠져나가고내 귀와 코가 잘리고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나리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역사의 마지막 유언 - 유관순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2)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3남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1919년 당시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인 유 열사는 3월 1일 파고다 공원, 3월 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독립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열사는 어른들과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하며 태극기를 손수 만..

제1길 망우왕숙길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 ~ 근심 먹는 우체통)

망우역사문화공원은조선시대 ‘망우리’(忘憂里) 지명의 유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건원릉 자리를 친히 답사하고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곳을 자신의 능지(陵地)로 결정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 올라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경탄한데서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이러한 지명유래는 「숙종실록」, 「승정원일기」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1912~1932 일제강점기, 화장장과 공동묘지의 등장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문화는 땅에 시신을 묻는 매장문화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정한 공동묘지 외에는 묘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공동묘지 조성을 위해 경성부는 1920년대 전후로 서울의 동서남북(신당리, 아현리, 이태원,..

제1길 망우왕숙길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역 ~ 딸기원)

버스 타고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리면 '구리 ↔ 서울 경계석'을 지나야 망우왕숙길 시작점인 딸기원에 갈 수 있어요. 평해길 처음 곳이자 망우왕숙길 처음 곳인 딸기원에 도착하면 경기옛길 평해길 안내판과 왕우왕숙길 안내판을 볼 수 있습니다.제1길 망우왕숙길 딸기원 이야기딸기원마을은 구리시 교문1동에 속해 있는 자연마을입니다.서울에서 망우리고개를 넘으면 첫 번째로 마주치는 마을이지요. 옛날 평해로로 고개를 오가던 시절 이곳에는 주막집들이 있었답니다. 지금이야 경춘로라는 넓은 도로가 생기며 고개를 넘기가 쉬워졌지만 옛날에는 걸어다기기에 상당히 가파른 고개여서 고개를 넘어온 사람이나 넘어갈 사람이나 모두 이 마을에 있던 주막에서 쉬었다 가고는 했지요.원래의 마을 이름은 '응골'이라 불렀는데 집도 몇 채 없..

제1길 망우왕숙길(딸기원 ~ 미음나루)

한양에서 관동으로 가는 시작의 길125㎞ 평해길 대장정의 시작인 망우왕숙길은 평해길 노선 중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첫 관문입니다. 마음의 근심을 잊는다는 의미를 가진 망우산은 수많은 역사적 위인의 묘소와 마주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공간입니다. 구리전통시장은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 등 오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며, 그중 인근에 위치한 돌다리곱창골목은 저렴한 가격과 전통적인 맛으로 숨겨진 명소 중의 하나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덟 밤을 유숙한 곳이라 전하는 왕숙천을 걸으며, 평해길의 매력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소요시간2시간 40분(8.8km)경로; 딸기원 → 구리시청 → 구리전통시장 → 구리역 → 미음나루 → 합수머리세월교스탬프 망우고개 : 망우산 등산로 초입(서울..

평해길 - 단종이 유배를 가며 걷던 길, 신사임당과 율곡이 오간 길

단종이 유배를 가며 걷던 길, 신사임당과 율곡이 오간 길01한양에서 관동으로 가는 시작의 길02수려한 한강풍경과 어우러진 인문지성의 길03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경관,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길04두 강이 만나 하나가 됨을 느끼는 치유의 길05청정자연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치유의 길06시간이 머무른 계절의 정취가 시작되는 낭만의 길07민족의 흔적과 마주하는 역사의 길08함께 하고 싶은 이와 떠나는 특별한 여정, 동행의 길09옛사랑의 추억과 폐철로를 걷는 낯선 경험의 길10내 안의 길을 찾는 명상의 길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간 여행,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남산 아래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 이곳은 도심 속에서 조선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특별한 공간이다. 바쁜 도시의 흐름 속에서도 한옥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다. 남산, 그리고 한옥마을의 탄생남산은 원래 ‘목멱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에 선비들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통 한옥 다섯 채를 이전·복원해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정원에는 서울의 자연식생을 살려 전통 수종을 심고,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했다. 고풍스러운 정자와 연못도 함께 복원되어 한옥마을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조선 시대..

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서울 한복판, 화려한 도심을 벗어나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경복궁 후원 속에 자리한 향원정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단순한 정자가 아닌 조선 왕실의 역사가 스며 있는 공간이자, 자연과 건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조선 왕실의 쉼터, 향원정향원정은 고종 시대에 조성된 육각형 정자로, 아름다운 연못 향원지 속 작은 섬에 자리하고 있다. ‘향원이 멀리 퍼진다’는 뜻을 지닌 향원지의 이름처럼, 이곳은 왕실이 휴식을 취하며 자연과 함께 숨 쉬던 공간이었다. 푸른 연꽃이 만개하는 여름이면 이곳의 운치는 더욱 배가된다.🌉 복원된 시간의 흔적, 취향교향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취향교다. 본래 6·25 전쟁으로 사라졌던 목교(나무 다리)는 202..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의 능, 김포 장릉

김포 장릉은 왕으로 추존된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으로, 쌍릉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장릉은 처음에는 ‘원(園)’의 형태로 조성되었다가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면서 능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원종은 조선 14대 왕 선조의 아들이며, 16대 왕 인조의 아버지였죠. 원종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인조가 즉위한 후 대원군으로 봉해졌고, 1632년(인조 10년)에 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원종과 인헌왕후의 이야기- 원종(1580~1619)은 선조의 셋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에 책록됨.- 광해군 시대 셋째 아들 능창군이 역모죄로 죽자, 충격으로 병을 얻어 40세에 세상을 떠남.- 아들 인조가 즉위 후 왕으로 추존하면서 정통성 문제를 정리.- 인헌왕후 구씨(1578~1626)는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