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방문자여권투어 16

연무관

연무관은 군사 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인조 3년1625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되었다. 이후 숙종 28년에 수어사 김재호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불렸지만, 숙종 때 연병관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고, 정조 때 수어영이라고 개칭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연병관 또는 연무관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조선 정조재위 176-1800 때에는 특별 과거 시험을 치르고 무기 시연과 군사훈련이 실시된 곳이다. 고종도 이곳에서 야간 군사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남한산성 연무관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관리되어오다 2021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연무관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펀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경관군사시설에 해당한다.연무관 (演武館)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

수어장대, 무망루 그리고 청량당

수어장대장대란 지위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격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있어 '서장대'라고 불렀다.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고, 수어청 우영장이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하였다.이후 영조 27년에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현종 2년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증수하였는에, 그 형인 박주수가 쓴 것이다.수어장대에서는 수어사가 수어청의 군사를 지휘하였는데, 정2품 상사에 해당하였다. 수어청은 한양을 수비하는 5군영의 하나록 본래 한성부 북부 진장방에 그 본청이 있고 광주부윤을 부사로 삼아 남한산성을 관할케 하였다.그러나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정조 19년에 본청을 완전히 남한..

남한산성행궁

남한산성행궁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한남루한남루는 정조 22년(1798) 광주유수 홍..

한양 방어를 위한 조선 시대의 성곽 남한산성

한양 방어를 위한 조선 시대의 성곽 남한산성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겨졌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렬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때 인조가 피신한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순식간에 한양으로 진격해 온 청의 군대는 한강을 건너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당시 성안에 있던 식량은 두 달 분량도 되지 않았다. 고립무원 상태로 버티던 조선은 강화도까지 함락되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을 스스로 걸어..

전등사

전등사 도량안내1. 대웅보전 2. 약사전 3. 명부전 4. 삼성각 5. 무설전 6. 월송요 7. 대조루 8. 선불장/공양간 9. 적묵당(종무소) 10. 강설당 11. 정족사고 12. 취향당 13. 관음전 14. 극락암 15. 종루 16. 남문 17. 양헌수비 18. 동문 19. 화장실 20. 죽림다원 21. 삼랑성 22. 부도전 23. 정족산성진지 24. 전등각 25. 문화관광해설사도량안내 | 전등사 도량안내 | 전등사도량안내 | 전등사www.jeondeungsa.org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이다. 1282년(충렬왕 8) 정화궁주가 송나라의 대장경을 간행하여 보관하도록 하고, 또 옥등(玉燈)을 시주해서, 절 이름을 전등사로 고쳤다고 한다. 167..

화성 융릉과 건릉

조선왕릉 세계유산 융릉 건릉향나무재실개비자나무화성 융릉 개비자나무는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시 융건릉에 있는 개비자나무이다. 융릉 재실에 있으며, 높이가 약 4미터, 줄기 둘레가 80센티미터에 이르러 한국 서식 개비자나무 가운데 가장 크다.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지정되어 있다.개비자나무는 보통 키가 3m 이내로 낮게 자라는데, 이 나무는 키가 4m에 이르고 줄기 둘레 도 80cm에 이르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어 융릉 재실 조영 당시에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상태도 우수하여 한국의 개비자나무를 대표하는 가치가 있으며, 융릉 재실과 관련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곤신지곤신지는 1789년(정조 13) 현륭원(융릉)이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이듬해..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간 여행, 남산골한옥마을

서울 남산 아래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 이곳은 도심 속에서 조선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특별한 공간이다. 바쁜 도시의 흐름 속에서도 한옥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다. 남산, 그리고 한옥마을의 탄생남산은 원래 ‘목멱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자연경관 덕분에 선비들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전통 한옥 다섯 채를 이전·복원해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정원에는 서울의 자연식생을 살려 전통 수종을 심고, 계곡을 만들어 물이 흐르도록 했다. 고풍스러운 정자와 연못도 함께 복원되어 한옥마을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조선 시대..

경복궁 향원정 (景福宮 香遠亭)

서울 한복판, 화려한 도심을 벗어나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경복궁 후원 속에 자리한 향원정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단순한 정자가 아닌 조선 왕실의 역사가 스며 있는 공간이자, 자연과 건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조선 왕실의 쉼터, 향원정향원정은 고종 시대에 조성된 육각형 정자로, 아름다운 연못 향원지 속 작은 섬에 자리하고 있다. ‘향원이 멀리 퍼진다’는 뜻을 지닌 향원지의 이름처럼, 이곳은 왕실이 휴식을 취하며 자연과 함께 숨 쉬던 공간이었다. 푸른 연꽃이 만개하는 여름이면 이곳의 운치는 더욱 배가된다.🌉 복원된 시간의 흔적, 취향교향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취향교다. 본래 6·25 전쟁으로 사라졌던 목교(나무 다리)는 202..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의 능, 김포 장릉

김포 장릉은 왕으로 추존된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으로, 쌍릉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장릉은 처음에는 ‘원(園)’의 형태로 조성되었다가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면서 능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원종은 조선 14대 왕 선조의 아들이며, 16대 왕 인조의 아버지였죠. 원종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인조가 즉위한 후 대원군으로 봉해졌고, 1632년(인조 10년)에 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원종과 인헌왕후의 이야기- 원종(1580~1619)은 선조의 셋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에 책록됨.- 광해군 시대 셋째 아들 능창군이 역모죄로 죽자, 충격으로 병을 얻어 40세에 세상을 떠남.- 아들 인조가 즉위 후 왕으로 추존하면서 정통성 문제를 정리.- 인헌왕후 구씨(1578~1626)는 능..

청동기 시대의 비밀을 간직한 강화 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 시대의 거대한 석조 유물로, 과거의 삶과 문화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서 그 밀집도가 높습니다.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약 4만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세계 전체 고인돌 수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강화도에는 약 70여 기의 고인돌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강화 부근리 지석묘입니다.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탁자식과 바둑판식으로 나뉘는데, 북쪽 지역에서는 주로 탁자식, 남쪽 지역에서는 바둑판식이 발견됩니다. 부근리 지석묘는 높이가 2.6m, 덮개돌의 길이가 6.5m에 달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탁자식 고인돌로 꼽힙니다. 50톤에 달하는 거대한 덮개돌이 두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