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의주길 62

고양 감리교회

120년 역사의 한국 최초 남감리교회윤치호 선생과 선교사 리드가 설립한 완벽한 조직의 감리교회 고양 감리교회는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회로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 교인이자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서 에모리(Emory)대학과 벤더빌트 (Vanderbit)에서 공부한 윤치호 선생에 의해 세워졌으며, 한국인의 촉구와 주선으로 시작된 남감리교의 선교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파 된 북감리교(아펜젤러), 북장로교(언더우드)와 달리 자주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윤치호 선생과 그의 요청으로 내한한 리드 선교사는 개성을 중심으로 선교를 하다가, 1897년 5월 2일, 벽제관이 있던 곳으로서 당시로는 번성했던 마을이었던 고양읍에서 리드와 콜리건이 장년 24인과 유년 3명에게 세..

벽제관지

고양 벽제관지(高陽 碧蹄館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지이다. 1965년 2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고양시의 고읍치(古邑治)는 벽제관에서 서북방으로 5리 정도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읍치를 옮긴 인조 3년(1625)에 이곳에 새로 세운 객관이 지금의 벽제관이다. 당시 규모는 면적 1,265평, 건물은 601평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언제 다시 건물을 세웠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일제 때 일부가 헐렸고 6·25 때 완전히 불타 버렸다. 그러나 1960년경까지도 객관문(客館門)은 남아 있었으나 퇴락(頹落)해 무너져버려 현재에는 객사의 윤곽과 터, 그리고 7척(尺) 간격으로 원좌주초석의 장대석(長臺石)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개요 조선 성종..

의주길 제 2길 고양관청길

의주길 제 2길 고양관청길(벽제관지 ~ 용미3리)고양의 옛 관아 자리를 지나는 관청고갯길고양관청길은 고양의 옛 관아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를 지나는 길입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파주 땅으로 넘어가기 위해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 외에 이 길 역시 자주 이용했습니다. 이 외에도 벽제관지 근처에서는 고양 지역 유교 문화의 중심인 고양향교와 중남미의 이색적인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통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경기옛길 (ggcr.kr) 경기옛길경기옛길 - 역사문화탐방로 경기옛길 소개, 도보여행, 역사, 문화유산, 운영프로그램 등 정보 제공.ggcr.kr

의주길 코스

세계로 향하는 길, 통일염원의 길! 장거리 역사문화탐방로 트레일 워킹코스 01의주와 대륙으로 향하는 첫 관문 - 제 1길 벽제관길 02고양의 옛 관아자리를 지나는 관청고개길 - 제 2길 고양관청길 03의주대로의 이정표, 쌍미륵을 지나는 길 - 제 3길 쌍미륵길 04옛 파주 관아를 지나 걷는 숲길 - 제 4길 파주 고개길 05철조망 너머 통일의 염원을 담은 길 - 제 5길 임진나루길

고양향교

아래는 경기 역사 유산원 홈페이지의 저세한 설명이다. https://gjicp.ggcf.kr/mediaObjects/77고양향교-gjicp.ggcf.kr고양향교(高陽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9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285번길 33-13이다. 이 향교는 조선 숙종(肅宗) 때 뛰어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경사진 언덕에 자리를 잡고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東·西齋)로 이루어지는 강학 공간을 전면에, 그리고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無)로 이루어지는 제향 공간을 후면에 배치한 소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수법을 따르고 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대성전, 동 · 서무, 내삼문(內三門) 등은 ..

연산군 금표비

금표내범입자논기훼제서율처참 연산군 사냥터에 들어 오는 자는 .... 헉!아래는 경기역사문화원에서 설명한 금표비에 대한 소개. https://gjicp.ggcf.kr/mediaObjects/74 연산군시대금표비(燕山君時代禁標碑)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10-2번지이다. 연산군이 자신의 유흥지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로 1980년대 중반 인근의 전주 이씨 자손들이 금천군 이변묘역의 정화사업을 벌이던 중 발견되어 이곳에 세워진 것이다. 땅속에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출토되어 황토 빛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이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웠으며, 상단과 하단의 좌측 일부가 떨어져 있다. 비의 대좌는 후에 새롭게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 앞면에 ‘禁標..

관청고개 고읍마을

80년 동안 고양군의 행정 중심이자 파주를 잇던 길목 관청고개와 고읍마을80년 동안 고양군의 행정 중심이자 파주를 잇던 길목 관청고개(관청재)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의 고읍마을과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이곳을 관청고개라 부르는 것은 고개 아래 고읍마을이 과거에 고양관를 비롯한 주요한 관청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지금도 이 지역에는 고음(금), 읍내, 관청재, 향교 등 옛 관청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주로 혜음령이 옛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관청고개 역시 고양과 파주를 오가는 중요한 도로였습니다. 원래 고양군청은 지금의 서삼릉 부근에 있었지만 이곳에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의 능이 들어서면서 1544년에 고양군청이 이 마을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로부터 약 80년 동안 이 ..

혜덕사

조선 태종의 아달 온령군과 그의 후손을 모신 사당 혜덕사, 숭모문과 신도비다음은 전주이씨 온녕군파 홈페이지에 기록된 온녕군의 약사 온녕군 이 정(李 䄇)은 1407년(태조 5) 태종의 일곱째 아들〔신빈(信嬪) 영월신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인은 익산군부인(益山郡夫人) 순천 박씨(順川朴氏)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동모제(同母弟) 근녕군의 둘째 아들 우산군(牛山君)을 양자로 삼았으며 우산군이 슬하에 6남(6남2녀)을 두어 후손이 크게 번창하였다. 1454년(단종 1)에 졸(卒)하였으며, 시호는 양혜(良惠)이며 묘소는 혜덕사 뒷산 대자동 산10-1 갑좌(甲坐)이다. http://onyeong.org/m/board/community.php?ptype=view&idx=6680&page=1&code=p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