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의주길 63

장산 전망대

유유한 곡선 그리는 물줄기 첫 번째 찾아갈 전망포인트는 파주 문산읍 ‘장산전망대’다. 이곳은 오래도록 군사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DMZ를 따라 평화누리길이 조성되면서 비로소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곳이다. 장산전망대의 가장 큰 장점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00m만 걸어가면 탁 트인 전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주차장을 찾다가 헤매는 이들이 많다는 것. 내비게이션에 ‘장산전망대’를 치면 내비의 종류에 따라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산21-3’이라고 주소를 정확히 검색해야 한다. 넓은 헬기 착륙장과 화장실이 보이면 주차장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전망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어가면 나온다. 이왕이면 텀블러에 커피 한잔과 돗자리 한 장을 ..

임진 나루터에서 장산 전망대 입구까지

제5길 임진나루길임진나루 뱃사공이야기 거짓수염을 간파한 뱃사공의 지혜관북/관서의 분기점이자 의주대로의 중요한 길목 임진나루는 한국의 역사와 민속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간주되며, 임진강(현재의 한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 중 하나였습니다. 이 나루는 관북(현재의 평양 방향)과 관서(현재의 서해 방향)의 분기점 이었으며, 한양(현재의 서울)에서 의주(현재의 의정부)로 향하는 의주대로의 주요한 길목이기도 했습니다.임진나루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는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속이려고 양반으로 변장하고 시험을 벌인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나 임진나루의 뱃사공은 그 속임수를 간파합니다. 그 이유는 뱃사공의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모습을 보고, 바로 자..

화석정

율곡 이이가 8살 때 시를 지은, 파주 화석정파주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가 언덕에 자리한다. 화석정은 율곡 이이의 5대조에 의해 지어진 정자였다. 화석정이 널리 알려진 것은 율곡이 은퇴 후에 이곳에 머물며 독서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부터였다. 임진강가 명소인 화석정을 노래한 시가 굉장히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일명 ‘팔세부시(八世賦詩)’이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73년(현종 14) 중수한 것도 역시 6.25전쟁 당시 사라졌다. 현재의 화석정은 그 터에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지은 것으로 화석정 편액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다. 분단을 상징하는 판문점이 있는 파주. 파주의 인물하면 율곡 이이가 대표적이다. 파주는 율곡 이이의 고향이자, 그의..

의주길 제 5길 임진나루길

제5길임진나루길(선유삼거리 ~ 임진각)철조망 너머 통일의 염원을 담은 길 화석정은 조선의 대학자였던 율곡 이이가 유년시절과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그와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내려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임진나루는 화석정 근처에 있는 나루로 임진강 이편과 저편의 옛 의주대로를 잇는 길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임진각 이북으로는 길을 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주길은 임진각으로 길을 이었습니다. 이제는 분단의 상징이 된 임진각에서,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이어지는 의주길의 꿈과 평화를 기원해 봅니다.

봉서산

제4길 파주고을길 봉서산 이야기다양한 역사와 전설로 가득한 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주둔했던 군사적 요충지 봉서산은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에 위치한 산으로, 역사와 전설로 유명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봉황이 노래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전설과 역사적 사건들이 얽혀 있는 곳으로 군사적 중요성도 갖고 있습니다. 봉서산의 정상에는 두개의 우물이 있는데, 하나는 "장사우물"이고 다른 하나는 "전대우물'어라고 합니다. 장사우물은 장사라는 인물이 먹었다는 전설이 남아있으며, 전대우물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들은 봉서산에 대한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봉서산에는 장사가 노는 모습을 상징하는 "공기바위"라는 바위도 있습..

파주향교

파주향교 대성전 坡州鄕校 大成殿경기도문화재자료 제83호 파주향교의 연혁에 대하여는 관련 기록이 남은 것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설이 구전해 온다. 첫째, 1398년(태조7)에 서원산瑞原山 아래에 창건하였고 그 후 1414년(태종14)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둘째, 1304년(고려 충렬왕30) 봉서산鳳棲山 아래에 건립하여 대성당大成堂이라 불리던 것을 세종 재위 시(1418~1450)에 중건하고 대성전이라 개칭하였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다. 셋째, 1456년(세조2)에 창건하고 1660년(현종원)에 사액을 받아 돈암서원遯巖書院이라 하였고 1880년(고종17)에 수해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도 한다. 파주향교는 전체적으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