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가 8살 때 시를 지은, 파주 화석정
파주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가 언덕에 자리한다. 화석정은 율곡 이이의 5대조에 의해 지어진 정자였다. 화석정이 널리 알려진 것은 율곡이 은퇴 후에 이곳에 머물며 독서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부터였다. 임진강가 명소인 화석정을 노래한 시가 굉장히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일명 ‘팔세부시(八世賦詩)’이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73년(현종 14) 중수한 것도 역시 6.25전쟁 당시 사라졌다. 현재의 화석정은 그 터에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지은 것으로 화석정 편액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다.
분단을 상징하는 판문점이 있는 파주. 파주의 인물하면 율곡 이이가 대표적이다. 파주는 율곡 이이의 고향이자,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가 율곡과 함께 묻혀있는 곳이다. 율곡이란 호도 이이가 자란 밤나무골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리고 율곡 이이를 향사하는 자운서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파주는 강릉 오죽헌과 함께 율곡 이이의 숨결이 많이 남아 있는 장소이다. 거기에 파주를 대표하는 누정인 화석정(花石亭)도 더해진다.
화석정은 남한 땅과 북한 땅을 가로지르며 서해로 흘러가는 임진강가 언덕에 자리한다. 서울보다 판문점이나 개성이 훨씬 가까운 거리이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 야은 길재(吉再)가 살던 터에 율곡 이이의 5대조인 이명신(李明晨)이 1443년(세종 25)지은 정자라고 한다. 이명신은 파주 관아에서 북쪽으로 17리 지점인 임진강 남쪽 언덕에 정자를 지었고, 율곡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1478년(성종 9) 중수하였으며,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율곡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나서 이곳에서 독서와 후학을 가르치면서 세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임진강가 경관 좋은 곳에 세워진 화석정을 노래한 시가 굉장히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일명 ‘팔세부시(八世賦詩)’이다. 근래 이 시를 정자 곁 큰 바위에 새겨놓았고, 정자에도 걸려있다.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화석정은 조선 시대 명소의 하나였다. 1740년(영조 16) 영조는 개성의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화석정을 바라보며 “지금 나의 고심은 바로 선정의 마음이다. 저 강가의 정자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슬픈 마음이 깊어지노라”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화석정과 임진왜란 때 피난하던 선조와의 일화도 전한다. 칠흑같이 어둡고 비오는 밤이었다. 아무것도 안보이던 임진나루를 건널 때 화석정에 불을 질러 선조가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다. 『징비록』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럴 듯한 스토리다. 『징비록』을 썼던 서애 류성룡도 화석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마주선 산 형세 본래 한 줄기이고
갈라진 강물도 한 근원이네.
화석 옛 정자에 사람 보이지 않으니
석양에 돌아가며 거듭 넋이 사라지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73년(현종 14) 중수한 것도 역시 6.25전쟁 당시 사라졌다. 현재의 화석정은 그 터에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지은 것이다. 화석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화석정 편액은 박정희 대통령 친필이다. 정자 안에는 율곡 이이의 시판과 기문 등이 걸려있다.
율곡 이이가 8살 때 시를 지은, 파주 화석정<선비 문화의 산실, 누정<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화석정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세종 25년(1443)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추명)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1478)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 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 년 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 되어버리고 말았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제5길 임진나루길 선조의 피난길
율곡의 예언과 충신들의 희생
나라를 지킨 충신들의 희생을 기리는 임진강 일찌기 율곡선생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을 묻힌 걸레로 정자 마루의 기둥을 닦도록 하였으며, 임종 때"어려움이 다치면 열어보라"고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폭풍우가 너무 심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자 이에 피난길을 따르던 이항복이 율곡의 밀봉한 편지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길이 올라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1593년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고자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의주로 피난 가던 당시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을 기억하고, 강을 지키고자 목숨을 지푸라기와 같이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선조가 통곡하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하였다 하여 신지강을 임진강으로 개칭
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임진강 八景을 노래한 「래소정어(來蘇亭於)」
우리에게 알려진 임진강 팔경의 출처는 래소정어(來蘇亭於)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금의 문산읍 장산리 임진강변에 위치했던 정자(亭子) 래소정에서 바라 본 임진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시이다.
래소정은 임진나루 남쪽에 있던 정자로 조선시대 영의정 관직을 지낸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이 건립한 정자이다.
조선 숙종때 문신인 호곡 남용익(壺谷 南龍翼) 선생이 래소정에 올라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으니 이것이 임진강 팔경의 유래가 된 ‘래소정어’이다.
래소정에서 바라 본 임진강 팔경은 1. 화석정의 봄(花石亭春) 2. 장암의 낚시(長岩垂釣) 3. 송암의 맑은 구름(松巖淡雲) 4. 장포의 가랑비(長浦細雨) 5. 동파역의 달(東坡驛月) 6. 적벽 뱃놀이(赤壁仙遊) 7. 동원의 눈(桐園雪) 8. 진사의 새벽 종(津寺曉鍾)을 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풍광은 지금 대부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흔적만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남용익 선생이 당시에 읊었던 임진강 팔경을 소개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본다.
제1경 화석정(花石亭)의 봄
화석정에 만발한 꽃을
花石亭前花事新
홀로 감상하는 나그네
獨來昑賞有閒人
율곡의 명성을 알지못했던 그가
幽旁擧世無相識
애석타 탄식한들 선생이 가신뒤 봄이라네
可惜先生去後春
화석정은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임진강변에 위치한 정자다. 1443년(세종 25) 율곡 이이 선생의 5대조부인 강평공 이명신(李明晨)이 정자를 세운 후 율곡 선생이 국사의 여가가 날때마다 이 곳을 찾았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보냈다 한다. 정자에는 율곡 선생이 8세때 이 곳에 올라 지은 화석정 8세시가 걸려 있다.
제1경은 화석정에 올라 만발한 꽂을 감상하며 율곡 선생의 큰 뜻을 되새기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제2경 장암(場岩)의 낚시
백척난간에서 봄강에 낚시 드리고
垂釣春灣百尺臺
고기를 낚는다면 큰 술잔 살려 했건만
得魚將欲沽深盃
지나는 사람 내마음 몰라주고
傍人不解吾心事
도(道)를 떠난 동강(桐江)에 물색만 오네
道桐江物色來
장암(場岩)은 ‘마당바위’로 지금의 문산읍 장산리 임진강변 절벽위에 매우 평평한 바위가 있었는데 그 넓이가 매우 넓어 사람들이 마당바위 곧 장암(場岩)이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구술에 의하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경의선 철로를 가설하면서 마당바위를 모두 쪼개갔다고 하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제3경 송암(松巖)의 맑은 구름
정처없는 뭉게구름 점점 떠오르듯
何處淡雲點點浮
그림같은 먼 산이 속이 찬 머리같이
遠山如畵恰盈頭
비스듬히 바라보니 다정도 한 듯
橫遮望眼知多意
시객(詩客)이 고수(古愁)를 조문할까 겁내는 듯
恐惹騷人弔古愁
송암(松巖)은 특정 지명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래소정 인근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있던 곳을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4경 장포(長浦)의 가랑비
장개의 가랑비 맑았다 흐렸다
長洲細雨晴
백로가 가로 날으니 풀빛이 나는 듯
白鷺橫分草色飛
어부는 풍랑을 근심치 않고
漁子不愁風浪起
배에 기대어 녹사의(綠蓑衣-도롱이)를 부르네
倚船遙喚綠蓑衣
장포(長浦)는 긴 포구라는 이름으로 파평면 두포리 구간의 임진강 개펄로 추정된다. 지명유래를 보면 지금의 파평면 두포리 앞 임진강을 장깨(장개)라 하여 긴 개펄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곳에 성담수 선생이 몽구정을 세웠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5경 동파역(東坡驛)의 달
동파역루에 달이 비쳐
東坡古驛月當樓
집집마다 발 위에 갈구리로다
處處人家簾上鉤
규성(奎星)은 보기로는 멀지 않거늘
一點奎星看不遠
오늘밤엔 들려 광한유(廣漢遊)하리
今宵應入廣漢遊
* 규성(奎星) - 별이름
동파(東坡)는 현재 임진강 북안의 진동면 동파리를 말한다. 동파리에는 조선시대 임진강 남안의 임진나루에서 건너 북안의 동파나루에 닿는 곳인데 임진왜란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갈때에도 임진나루를 건너 동파나루에 당도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시에서 동파역(東坡驛)이라 함은 동파나루를 건너 위치했던 역원(驛院)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위치는 화석정에서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곳이 동파가 된다.
제6경 적벽(赤壁) 뱃놀이
적벽 머리에 다시 배띠었나니
赤壁磯頭更泛舟
소선(蘇仙) 가신 후 풍류는 남았도다
蘇仙去後尙風流
부서지는 파도 밝은 달 모두 좋은 밤
波殘月白皆良夜
황강(黃岡)이 필요없는 임술년 가을일세
不必黃岡壬戌秋
* 황강(黃岡) - 중국 호북성 황강현, 소식(蘇軾)이 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하고 이곳에 거실을 마련하였다 한다.
적벽(赤壁)은 임진강의 전 구간에 걸쳐 형성된 현무암 절벽을 말한다.
이 시에서 말하는 적벽은 아마도 화석정 아래에 펼쳐진 율곡리 적벽 구간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7경 동원(桐園)의 눈
동원의 모설(暮雪) 희기가 애애하고
桐園暮雪白
언덕위 바라보니 날씨 개여가네
望裏平坡霽色開
밤이 되어도 강가 사릿문 열렸나니
入夜江扉終不掩
아마도 섬계(剡溪)의 왕자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리
剡溪疑有子猷來
* 섬계(剡溪) - 중국 절강성 조아강(曹娥江)의 상류, 진(晋)나라 왕자 유(猷)가 눈오는 밤에 재규(載逵)를 방문한 고사에서 유래
동원(桐園)은 ‘오동나무 정원’이란 뜻으로 현재 장산리 마을에 느티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곳을 동원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는 동원은 임진나루를 건너 동파리에 주막거리가 있었는데 주막거리 주변에 오동나무가 많았다 하며 이 곳의 자연마을명이 동자원동(桐子院洞)이라 유래되고 있어 래소정에서 강건너로 보이는 이 곳의 풍광을 시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8경 진사(津寺)의 새벽종
나루머리에 절이 서니 백운이 층(層)이 되고
津頭寺隔白雲層
밤중에 종 울리매 노승이 있음이야
半夜鳴鍾有老僧
내 고소성(姑蘇城) 밖에 머문 것 아닌데
不是姑蘇城外泊
한천(寒天)에 지는 달과 어등(漁燈)을 보누나
寒天落月又漁燈
* 고소성(姑蘇城) - 중국 강소현 고소산에 있는 성(城)
진사(津寺)는 임진나루 인근에 있던 사찰로 보여지는데 문헌 기록에 임진나루 인근인 율곡리 산중턱에 사지(寺址) 기록이 있어 이 사찰이 아닌가 추정된다.
파주시대 | <기획연재>-임진강 八景을 노래한 「래소정어(來蘇亭於)」 (pajusidae.com)
花石亭 (화석정) 화석정에서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는고?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울고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이이 지음
임동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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