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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평해길

제2길 미음나루길(카페테리아 ~ 미음나루 이야기 ~ VIEW 66)

by 나들나들 2025. 8. 15.


미음나루 이야기


미음나루는 남양주시 수석동 외미음마을에 위치하였던 나루입니다.
예전에는 나룻배를 이용하여 강 맞은편인 하남시 선동과 미사리로 건너다니던 나루였지요. 한강에 다리가 놓이지 않았을 때는 곳곳에 나루가 있어 강을 건너다녔습니다.

그러니 현재 한강에 다리가 놓여 있는 곳은 옛날에 나루가 있었던 곳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현재 미음나루 근처에는 강동대교가 놓여 있어 구리-판교간 고속도로를 이어주지요.
조선 전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미음나루는 양주 읍치 동쪽 70리에 있는데 광주로 통하는 나루다."라고 하였죠.
옛날 구리는 양주, 판교는 광주에 속했으니 미음나루가 연결시키던 옛길의 진화형태가 바로 판교-구리간 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겠네요.

또한 미음나루는 한강을 떠다니던 뗏목과 배들이 머물며 쉬어가던 물길의 정류장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뱃사람과 떼꾼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주막들이 나루 주변에 있었지요.

이러한 전통이 남아 있어서인지 현재 이 마을은 '미음나루풍속마을'로 조성되었습니다.

술과 국밥을 팔던 주막집들 대신 카페와 토속음식점들이 들어선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전통은 사라지지 않고 오랜 동안 남아서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임을 미음나루의 사례를 통해 실감할 수 있습니다.


 

미음나루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외미음에 있는 나루터로, 남양주시와 하남시 미사리를 이어주는 한강나루입니다. 

미음나루는 한강의 나루터 중 광나루에 버금가는 곳으로 지금도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콘크리트로 둑을 쌓아놓은 상태입니다.
「동국여지승람」과「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미음진의 주위 동쪽 70리에 있어 광주로 통한다." 고 나와 있는데, 미음진은 평구역(삼패동에 있던 역)에서 광주를 잇는 나루터의 하나로 남북 교통로의 요지였습니다.
조선시대 하남 일대 한강변 곳곳에는 나루가 있었는데 군량미나 둔전세를 하역하여 남한산성으로 운반하던 포구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도미진(渡迷津)은 흔히 두미나루 두미진이라고도 하였는데, 현재의 배알미동 팔당댐 부근으로 사평소로와 평해대로를 이어주었습니다. 

도미진 하류에 미호진(渼湖津)이 있었는데 흔히 미음나루, 둔지나루라고도 불리었습니다.
미음나루는 석실서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주위에는 김창협이 살았다는 삼주삼각산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강을 타고 내려오는 배들이 미음나루에서 석실서원에 필요한 물건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변은 겸재 정선이 '삼주삼신각' 이나 '석실서원'을 그린 것처럼 주위에 풍광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특히 석실서원 앞에 있는  한강을 미호(美湖) 라고 하여 한강이 마치 호수같이 보인다고 하여 아름다움을 극찬 하였습니다.


미음나루

 

현 위치에 있는 미음나루는 지금의 남양주시와· 하남시 미사리를 건너던 한강나루 중의 하나였다. 

인근 야산에 축조된 수석리 토성과 함께 삼국시대에 한강변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조선시대 안동 김씨 석실서원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미음나루의 '미음' 이라는 이름도 안동 김씨 후손의 호를 따서 붙여졌다.

주위에는 김창협 선생이 살았다는 '상주삼산각,' 이 있고, 여기를 통과하여 아산을 가로 지르면 석실서원지가 나온다.
이 주변은 18세기 조선 문화: 부홍기를 상징하는 검재 정선이 한강을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고(湖) 극찬할 정도로 한강과 '상주삼산각 , '석실서원' 의 경관이 잘 어우러져 그림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나루터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현재는 콘크리트로 둑을 만들어 놓은 상태이고 예부터 한강을 오가는 배들의 증간 쉼터이자, 남북 교통로의 요지로써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주막들이 번성했던 자리에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 레처시설들이 자리잡고 있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강변의 풍경과 한강의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청시행 강릉 수제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