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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전도비

서울 삼전도비 서울 三田渡碑 사적인조 14년(1636) 봄, 조선은 형제 관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자는 후금의 요구를 물리쳤다.국호를 대청(大清)으로 바꾼 청 태종은 이윽고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거하다가 당시 한강나루터였던 삼전도로 나와 청 태종의 신하가 되는 의례를 거행했다. 인조 17년(1639)에 세운 삼전도비의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清皇帝功徳碑)이며 이러한 치욕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로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용 모양으로 장식했다.몸돌 앞면에 청에 항복했던 상황과 청 태종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만주문자(왼쪽)와 몽골문자(오른쪽)로 새겼고, 뒷면에는 한자로 새겨 놓았다.비석 옆에는 작은 크기의 받침돌이 하나 남아있는데 이는 더 큰 ..

제6암문(서암문) 暗門

제6암문(서암문) 暗門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쉴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성벽의 흐름방향과 달리 입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외부에서 쉽게 관측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북동쪽의 성벽을 돌출하여 암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원성에 설치된 12개 암문의 외측 개구부(開口部)는 대부분 흥예식(虹霓式)이지만 제2암문과 더불어 이 암문의 개구부는 평거식(平据式)이다.인조 15년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대통령 리승만 박사 송수탑(頌壽塔)

남한산성 수어장대 근방에 다다르면 저멀리 송송한 나무들 사이 낯선 공간이 언듯 보인다. 이곳에 이르라 보면 더욱 기괴한 시설이 눈에 들어 오는데 이것이 무엇일지 호기심이 발동하고 사람들마다 구구한 추측이 난무하다.둥근 원탁 회의탁자장수가 울라 지휘하던 지휘대무희들이 춤추던 무대모두 아니다.비밀의 열쇠는 바로 아래에 보이는 무궁화 무늬의 석판에서 찾을 수 있다.이 시설은 경기도 남한산성에 건립됐던 「대통령 리승만 박사 송수탑(頌壽塔)」의 기단이다.이 탑은 1956년 6월15일 李 前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해 건립된 것으로서 1960년 4·19 이후 장면 정부 명령으로 철거됐다. 철거에 동원됐던 당시 주민들은 4m가량의 탑과 탑 위에 놓인 봉황 모양의 청동 조각을 분리해 탑 부분만 기단 앞 땅 속에 묻었던 것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