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철불 좌상이다.
얼굴은 둥글지만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 날카로운 코의 표현에서 관념적으로 변해가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가슴까지 내려와 목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짓지 않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옷에는 간결한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당당한 어깨와 두드러진 가슴은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어 받은 것이며, 날카로운 얼굴 인상과 간결한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 초기 불상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이다.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지명유래
고골을 한자로 고읍(古邑)이리고 하는데, 옛날(古)에
백제 초기 고을(邑) 에 지에서 유래된 것 같고 골말은 고골의
OO마을인 고을마을의 줄임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통마을의 유래
옛 시대에 중통(中統) 벼슬을 각진 분(고관직)이 기거 하였다히여 죽통마을로 불리어 왔다.
조선 병자호린 때 중문동에 서원이 있다고 하였고, 전에는 중동( OO )말로도 불렸다.
중통마을을 중심축으로 해서 앞벌 뒷벌(천행벌) 그 가운데를 양벌제 암북동 참니무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2000년 전, 선사 시대에도 인간이 살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고인돌이 존재했다.
옛 백제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와편과 토O편을 통해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중통마을은 남북으로 옛길이 백제 OOO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조선 순조 때
편집된 OO요람에 북쪽 OOOOOO)에 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통마을은 먼 옛날부터 주거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경기옛길 > 영남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화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전승문)까지 (0) | 2024.12.03 |
---|---|
두창 7리 버스 정류장 (0) | 2024.11.05 |
내동 다음에서 두창 7리 버스 정류장까지 (0) | 2024.11.05 |
내동 연꽃마을 (6) | 2024.11.05 |
용인농촌테마파크 (11) | 2024.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