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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전승문)까지

북문 北門 · 전승문 全勝門남한산성에는 동 · 서 · 남 ·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락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全勝門 이라 한것은 그 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과 남문, 수구문의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2년 1..

광주향교 다음부터 법화골까지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철불 좌상이다.얼굴은 둥글지만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 날카로운 코의 표현에서 관념적으로 변해가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가슴까지 내려와 목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짓지 않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옷에는 간결한 옷주름이 표현되었다.당당한 어깨와 두드러진 가슴은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어 받은 것이며, 날카로운 얼굴 인상과 간결한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 초기 불상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이다.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

광주향교 (廣州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하남시 대성로 126-13(교산동 277-3번지)이다.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광주향교가 창건된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원래 고읍(古邑) 서쪽에 있었는데 숙종(肅宗) 29년(1703)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한다.광주향교는 마을 후면의 평지에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외삼문과 대성전을 잇는 직선축상에 앞쪽으로는 명륜당(明倫堂)과 서재(齋)·동재터가 있고 뒤쪽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廡)가 위치하여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갖추었다.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이 있으며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장대석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