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근성지
양근(楊根)이란 지명은 고구려 시대에 근거를 둔 지명입니다.
양근이란 버드나무 뿌리를 의미합니다.
양평 시내에는 양근이란 지명과 관련된 양근대교와 10여개의 양근리가 있습니다.
현재 양평이란 지명은 1908년 9월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양근성지는 신유박해 이전 천주교 도입기에 천진암 강학회를 주도한 녹암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인 권일신 F. 하비에르 순교자가 태어난 곳입니다.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권일신 F. 하비에르 순교자의 유택지는 양평군립 도서관과 양평읍사무소가 있는 갈산 주변입니다.
양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자인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그랑몽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은 후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수표교 근처의 이벽의 집에서 이벽 세례자 요한과 권일신 F. 하비에르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시작됩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양근으로 내려와 권철신과 권일신 F.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운 충청도의 이존창 루도비꼬와 전라도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이로써 충청도와 전라도의 신앙 공동체는 양근성지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후 양근성지에서는 이승훈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들이 몸소 조과(아침기도), 만과(저녁기도), 성로신경(십자가의 길)등을 바치며 천주교 신앙생활을 실천하며, 천주교 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 천주교 창립의 주역들이 신부님의 역할을 하며 미사와 성사, 일명 모방 성직 제도를 2년간 실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 오밋다리 부근 즉 양근대교 밑은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순교지입니다.
오밋다리 부근 순교자는 주문모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두번이나 북경에 밀사로 다녀온 윤유일 바오로의 동생 윤유오 야고보, 4촌 여동생 윤점혜 아가다, 권상문 세바스티아노, 김일호, 유한숙 등입니다.
양평역 후문에서 전면으로 보이는 양근리 관문골은 옛 양근 관아가 있던 곳으로써 천주교 신앙 때문에 조상덕 토마스, 장사광 베드로와 손막달레나 부부가 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다 순교한 곳입니다.
양근성지에서 정상이 보이는 용문산은 초기 교회 지도자인 조동섬 유스티노와 권일신 F. 하비에르와 윤유일 바오로 순교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피정을 하던 곳입니다.
한편, 양근성지는 1801년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부부와 쌍벽을 이루는 조숙 베드로, 권데레사 동정부부가 태어나고 신앙을 증거한 곳이며, 모방 신부님은 1837년 1월 샤스탕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한 후 양근에 머물며 4주일 동안 조선말을 공부하며, 양근 신자들을 돌보고, 샤스탕 신부님과 함께 양근에서 부활축일을 거룩하게 보낸 곳입니다.


감호정과 감호암
감호정(鑑湖停)은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484-1번지 일명 덕구실에 있던 정자(후子)다.
양근리(陽根里) 갈산(葛山)에 살았던 건일신이 감오정이 있었던 덕곡(德谷),덕구실로 이사 하였는데, 그 이유는 학문을 종아하던 컨일신이 감오정에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선비들이 자주 모여 시회(詩會)를 열던 곳이었 |때문이다.
이처럼 감오정은 학문을 종아하던 소선의 선비들이 모여 시외를 열던 곳이다.
감호암(鑑湖岩)이란 감오정이 있던 덕구실 한강변 바위에 새려진 금석문(金石文)이다.
다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 전서의 권철신의 요지명에는 "녹암(鹿菴)이 거처(居處)하던 곳은 감호(鑑湖)라고 불렀다"
감호(鑑湖)란 거울처럼 맑고 호수처럼 잔잔한 강물이 흐르는 곳이다.
감호암이란 금석문의 발견으로 권철신, 권일신이 살았던 유택지(幽宅地)는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 대감마을이 아닌 양평
읍 양근리 갈산 연 양평읍 사무소 자리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권철신 묘지명에서 신해박해(1791년)때 동생 권일신이 순교하자 권철신은 "문을 닫고 슬품을 머금은 채, 10여 년간 산문(山門, 뒤는 막히고 앞은 대문처럼 좁여진 산 어귀) 밖을 나오지 않있다" 고 밝힌다.
그러므로 다산이 권철신이 살던 곳을 "감호" 라고 부른 것과 "산문" 이 의미하는 지영과 일치하는 현 양평읍 사무소 자리는 권철신, 권일신이 살았던 유택지이다.
이는 권일신의 직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하는 가정의 전승(傳承)과도 일치한다.
현재 양평읍 사무소 안에는 큰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가물 때 인근 마을 사람들의 식수용으로 사용되었고, 권철시네 여러 형제들의 많은 문족(門族)들을 비롯한 식객(食客)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한국의 "명문가 이야기" 를 쓴 조용헌은 사대부 (土大夫)가문의 특징을 지리적으로 외부에서 적이 침입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기에 큰 우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당 대의 대학자였던 권철신, 권일신의 유택지인 양평읍 사무소 자리가 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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