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온사
조선시대 인조 27년(1649년)에 지어진 과천현의 객사이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를 모셔놓은 곳으로, 일정한 날짜에 임금이 계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외에도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나라의 일을 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객사는 고을의 수령이 일을 하는 동헌보다 더 지위가 높다. 그래서 고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며 건물도 정성을 다해 지었다.
온온사는 정조임금께서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머물며 붙여주신 이름으로 ‘경치가 아름답고 몸이 편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청(政廳) 3칸이 중앙에, 좌우로 동·서현이 각각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청 부분 지붕을 동·서현보다 약간 높게 지은 전형적인 객사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원래는 현재의 중앙동사무소자리에 있었는데 1986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과천현 관아지
과천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건물인 관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과천현의 관아는 조선 초기 무학대사의 제자인 열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임금이 묘소(능), 온천, 사냥을 오고 가면서 이용하던 행궁의 기능과 지방 관청의 기능을 모두 처리했기 때문에 다른 곳의 관아보다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되는 석조유물(돌로 만들어진 물건)과 노거수목(나이가 많은 나무)으로 보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온온사를 중심으로 관아가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천현 신수읍지(숙종25, 1699년 작성)에 과천현 관아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온온사 - HeritageWiki (aks.ac.kr)
과천현 관아지
역대현감비석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