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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방문자여권투어/선사 지질의 길

신라 경순왕 능묘

by 나들나들 2025. 10. 3.

신라 경순왕릉 안내도 新羅 数順王陵 案内圖

1 능상(陵上) : 왕의 무덤으로 봉분, 산소, 분상이라고도 함
2 호석(護石) : 능상 주위를 두른 것으로 사대석 또는 병풍석이라고도 하며 봉분침하와 해충침입을 막기도 함
3 능표(陵表) : 직함(職銜)과 가계(家系)를 간략하게 기록하여 능 앞이나 옆에 세우는 것
4 혼유석(魂遊石) : 혼령이 나와 쉴 수 있도록 능상 앞에 설치하는 직사각형의 돌
5 곡장(曲墙) : 능을 보호하기 위해 능 주위로 동 · 서 · 북 세면을 둘러쌓은 담장
6 장명등(長明燈) :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무덤 앞에 세움
7 석양(石羊) : 능 주인의 명복을 빌고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역할을 함
8 망주석(望柱石) : 먼 곳에서 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표지로서 영혼이 자기의 유택(능)을 찾아오게 하는 안내역할을 함
9 비석(碑石) : 원래 고랑포구 주변에 있던 것으로 경순왕의 신도비로 추정되어 1987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비문의 내용이 많이 훼손되어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으며 단지 비석의 형태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10 비각(碑閣) :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
11 재실(齋室) : 1986년 건립한 것으로 능의 제례를 준비하기 위한 건물

신라 경순왕릉 新羅 敬順王陵

사적 제244호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


경순왕(敬順王, 927~935; 재위)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감(金), 휘(諱)는 부(傅)이며 제46대 문성왕(文聖王)의 후손이다.
경순왕이 경애왕(景哀王)의 뒤를 이어 즉위할 당시에는 국력이 쇠퇴하였다. 
각처에서 군응(群雄)이 할거하였는데 특히 후백제
견환(甄萱)의 침략으 로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있었다. 대세(大勢)가 고려로 기울어지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고려 왕건(王建)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 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경순왕이 경종(景宗) 3년(978)에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 곳에 능이 마련되었으나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실전(失傳)되었다가 조선시대 영조(英祖) 23년(1747)에 다시 찾게 되었다. 
경순왕릉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비 되어 능표(陵表), 양석(羊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등이 이 때 마련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경순왕의 운구(運柩)행렬이 경주로 가기 위해 이 곳 임진강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고려 왕실에서 경주지역의 민심을 우려하여 "왕릉은 개경 100리 밖에 쓸 수 없다" 하는 이유로 운구행렬을 막았다고 한다. 결국 경순왕릉이 이 곳 고랑포 북쪽 언덕에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신라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능이 되었다.



연천 경순왕릉 漣川 敬順王陵

사적

경순왕(敬順王 927~935 재위)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金 이름은 부이다. 경순왕이 즉위할 당시 한반도는 후백제, 고려, 신라로 분열되어 있는 후삼국 시대였다. 신라는 후백제 견훤의 침략으로 영토는 날로 줄어들었으며 국가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와중에 귀족의 권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경순왕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미 기울어 가는 나라를 되살리기는  힘들었다.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주었다. 그 후에 경순왕은 왕건의 딸 낙랑 공주를 아내로 맞아 정승공에 봉해졌으며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었다.
경순왕이 고려 경종 3년 978에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이 마련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잊혀 오다 조선
영조 23년1747에 다시 찾게 되어 조선 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비되었다.
전하는 바로는 운구 행렬이 경주로 가기 위해 이곳 임진강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고려 왕실에서 "왕릉은 개경 100리 밖에
쓸 수 없다."라는 이유로 막았다고 한다. 이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왕권을 확립해가던 고려가 경주에서 치러질 장례로 자칫 민심이
동요할 가능성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순왕릉은 왕릉으로서 곡장을 두르는 격식은 갖추었지만, 이곳 고랑포 북쪽 언덕에 자리잡아 신라 왕릉 가운데 경주 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능이 되었다.

1) 식읍 : 나라에서 공신이나 왕족에게 지급한 일정한 지역
2) 사심관 : 서울에 있으면서 고향의 일에 관여하던 관직
3) 곡장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신라 경순왕 능표 新羅 敬順王 陵表

 
앞면 前面
新羅敬順王之陵
신라경순왕의 릉

뒷면 後面
王新羅第五十六王後唐天成二年戊子代景哀王
而立清泰乙未遜國于高麗宋太平興國戊寅麗景
宗三年四月四日薨諡敬順以王禮葬于長湍古府
南八里癸坐之原
至行純德英謨義烈聖上二十三年丁卯月日改立

왕(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후당 천성 2년 무자(戊子928년)에 경애왕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셨고,
청태 을미년(乙未 935년)에 나라를 고려에 넘겨 주셨다.
송 태평흥국 무인년(戊寅 978년), 즉 고려 경종 3년 4월 4일에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경순이라 하고 왕의 예로
장단 남쪽 고부 8리 계좌 방향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지행순덕영모의열(영조의 존호) 성상 23년 정묘년(丁卯1747년) 월 일에 다시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