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 제467호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성이다.
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그 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있을 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남쪽 국경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 석축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 치미, 호자(虎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화려한 기와건물과 상당히 높은 신분의 지휘관이 호로고루에 상주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호리병 = 호로고루?
호로고루 주변의 임진강은 삼국 사대부터 호로탄, 술탄, 호로하 등으로 불렀는데, 호로고루는 호로하 근처에 있는 옛 성(古墨)이라는 뜻이다.
간혹 성울 뜻하는 고구려 말인 '훌'에서 '호로'라는 지명이 유래한 컷이라는 학설도 있고 이곳의 임진강이 크게 굽이처 흐르는 모습이
표주박처럼 보인다 해서 조선 시대에는 표로하(瓢濾河) 혹은 포로탄이라고 불렸는데, 표로하 근처의 성이라 하여 포로고루라 하던 것이 오놀에 이르러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고구려 국경방어사령부, 호로고루
고구려의 입장에서 임진강은 남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임진강을 잃게 되면 전선이 예성강까지 밀리게 되기 때문에 한강 유역을 상실한 고구려는 임진강까지 후퇴한 후 전열을 정비하고 기존의 성곽을 튼튼하게 보수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을 건너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는 가장 빠른 육상 교통로에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고구려는 이곳에 국경방어사령부를 두고 임진강 방어선을 관리하계 했다.
삼국 시대의 DMZ, 임진강
한강 유역을 빼앗긴 고구려는 임진강까지 후퇴해 덕진산성~호로고루~당포성~무등리 보루군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세웠다.
한편 신라는 한강 유역을 기습적으로 정령한 후 복쪽으로 진군해 임진강까지 진출했는데 고구려의 성락이 내려다보이는 임진강 남쪽의 신 정상부를 따라 오두산성(천성)~봉서산성~이잔미성~칠중성~수철성~군자산성~옥녀봉산성을 차례로 쌓아 북쪽의 고구려와 대치하였다.
이런 대치 상황은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까지 계속되었으니 임진강은 120여 년 동안 북쪽의 고구려와 남록의 신라가 대치하여 국가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 되었다.








호로고루 동벽 남쪽 치(雉)
치는 적을 족면에서 골력할 수 있도록 성벽 앞으로 내어 쌓은 쿠조를 말하는테, 호로고루 동벽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캐의 치가 있다,
남폭 치는 성벽의 상부가 훼손되면서 내부의 모습이 걸으로 들어나 성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치의 제일 안쪽 가장 놀은 성벽은 고구려의 보축성벽으로 바깥쪽에 기대어 쌓은 보축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고구려 보축성벽에서 바깔쪽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펀마암으로 쌓은 성벽이 보이는테 이는 후대의 신라가 쌓은 성벽이다.
이 심벽 앞으로 네모나게 바깔폭으로 내여 쌓은 성벽이 있다,
이것이 동벽의 남쪽 치다, 치는 다시 현무암의 기초를 가진 반원형의 성벽으로 다시 돌려저 있는테, 치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성벽은 95% 이상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은데 반해 신라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편마암이 사용되었다.
현무암은 돌이 질키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오랫동안 임진강 일대를 지배하며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한 고구려의 석공들에 비해 새롭게 임진강 지역을 차지한 신라의 석공들은 그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가 없어서 다루는테 익숙한 편마암을 멸리서 가져와 섬벽을 쌓는 수고를 했다고 한다.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
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이 40m, 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재미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돌의 양이 대략 15,996m2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인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이어 벌어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신라가 점령하여 사용하였다.
신라군이 점령할 당시 호로고루 동벽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성벽의 곳곳이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라군은 고구려성역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으로 보수하였는데, 고구려성벽은 신라성벽에 가려져 그 모습을 획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포대가 설치되면서 성벽의 윗부분과 남쪽 부분이 크기 훼손 되었고 고구려 유적으로 일려지기 이전 미을 주민이 뱀을 잡기 위해 중장비로 남쪽 치의 상부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고구려 성벽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게 되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후대의 인위적인 원인으로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로고루 동벽은 한 곳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성역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다.









집수시설 集水施設
이 유구는 고구려시대 집수시설로 2011년도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이 집수시설의 동쪽 끝에는 우물이 접해있다.
집수시설의 크기는 동서길이 786cm, 남북길이 720cm, 깊이 3m 정도다.
집수시설은 바닥에 통나무를 다듬을 각재를 네면에 깔고, 그 위에 현무암을 다듬은 석재를 쌓아서 벽체를 조성 하였다.
또한 특이하게 바닥에는 여러 겹의 통나무들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부엽층이 1m 정도 덮여 있었다.
집수시설에서는 고구려 토기편, 경질기와편, 적갈색기와펀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 집수 시설은 용도를 변경하여 계속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망향단



호로고루
이 절벽에 성을 쌓고
천 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나라 잃은 설움 안고
황포 배들이 머문 포구
당에서 말갈에서
기병들이 폴려오는데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
네가 들을까
머물 곳 없는 슬픔이 현무암을 쌓고
스스로 문을 닫으니
백만 대군이 와도 열 수 없으리
임진강이 마르고
좌상바위가 평지가 된다 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으니
그대여 어서 돌아와
회군의 나팔을 불어주게
호로고루 호로고루
연천벌을 지나서 고구려까지
푸른 바람이 부는구나
- 시인 전운호 作 〈봄날의 서재 中>













북에서 온 광개토대왕릉비 | 廣開土大王陵碑
이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소재한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제공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민간의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을 주도하며 이 비를 소장하고 있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화협)는 2015년 연천군에 이 비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연천군은 고구려의 기상을 되새기고 남과 북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남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구려유적인 연천 호로고루 사적 제467호에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영토를 많이 넓힌 아버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 지역)에 광개토대왕의 능과 함께 비를 세웠다.
광개토대왕릉비는 불규칙한 직4각형 모양의 커다란 각력응회암의 4면에 44행 1,775자의 비문을 새긴 비로 높이는 6.39m이고 너비와 폭은 1.35~2m이다.
비문의 내용은 앞머리에 건국시조인 주몽에서부터 광개토대왕까지 왕들의 계보와 업적이 적혀있고, 본문은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과 경계지역을 돌아본 일들이 적혀 있으며 끝머리는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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