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보석 사정리 마을
사정리 마을
조선시대에 군사를 훈련시키던 강무장이 있어 활터로 불리며 '사정리(射亭里)'가 되었다.
마을 남쪽으로는 한탄강이 흐르고 마을 북쪽에 고남산이 자리 잡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가지고 있다.
사정리에는 3세기를 전후한 원삼국시대 약 50여 가구 이상이 거주했던 집단 주거지 부락인 '사정리 유적'이 발견되어 한탄강을 이용한 농경문화가 발달하였던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한탄강 제일의 명승지인 '화적연(禾積淵)'의 금강산 유람길의 중요 기착지로 유명해지면서 많은 선비가 찾아 글과 그림을 남겼던 곳이다.
사정리의 명소
화적연 수변 생태 공원(포천시 관인면 사정리 34번지 일원
원삼국시대 주거지 유적인 '사정리 유적' 일원과 한탄강 강변에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모래네 유원지' 일대를 정비해 생태 복원 공간으로 조성한 공원으로,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9코스 '멍우리길'을 걸으면서 잣나무 숲길과 한탄강 전망데크, 야생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멍우리 협곡
약 30~40m 높이의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이 5km 이상 펼쳐져 있어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국가유산 중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상절리 협곡이 곧게 뻗어있어 '직탄(直灘)'이라고 불렸다.
금빛 수달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멍우리'라고 불리고 있으며,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8코스 '벼릇길 과 제9코스 '멍우리길'을 통해 한탄강의 절경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멍우리협곡 출렁다리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9코스 '멍우리길'과 제10코스 '한반도길'을 연결하는 무주탑 출렁다리로 총길이는 170미터이다.
한탄강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을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포천시 영북면 운천시내에서 한탄강 주상절리길 제12코스 '부소천길'과 연결되어 한탄강을 횡단할 수 있다.



화적연 명승 제93호 국가지질공원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산115번지
화적연의 유래와 전설
화적연은 순 우리말로 '볏가리소' 라고 한다.
뜻은 '벼 화', '쌓을 적', '연못 연'자를 써서 "볏짚단을 쌓아 놓은 듯한 연못" 을 의미한다.
화강암 바위가 한탄강을 휘몰아치는 곳에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벼 짚단을 쌓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이름이 붙여 졌는데, 화적연과 관련해서 많은 전설이 내려온다.
그중 하나는 "옛날 어느 날 한 늙은 농부가 3년 동안 가뭄이 들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자 하늘을 원망하면서 이 연못가에 앉아 탄식하고 있었는데, 늙은 농부는 '이 많은 물을 두고서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거늘 용도 3년을 두고 잠만 자는가 보다.' 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적연 물이 왈칵 뒤집혀서 용의 머리가 쑥 나왔다.
농부는 기절하게 놀랐는데 용이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처럼 화적연은 그 모습을 두고 농경사회였던 전통시대에 농사에 얽힌 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국행 기우제 터였던 화적연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기이한 형상을 한 화적연을 볏짚단과 비교하며 신성 시 했다. 이는 곧 풍년과 지역의 번영 그리고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물로 여겨졌다.
특히 화적연은 조선 후기에 와서 국가에서 거행하는 국행기우제 중 12번째인 마지막으로 기우제를 올렸던 곳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 조정에서 정승을 보내 제례를 지냈던 곳이었다.
화적연은 한강 이북 권역에서는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국행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당시 오래도록 가물어, 여러 신하들을 나누어 보내서 송경(松京)의 박연(朴淵), 영평(永平)의 화적연(禾積淵),양근(楊根)의 도미진(渡迷津), 과천(果川)의 관악산(冠岳山)에서 비를 빌게 하였다."[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5월 16일 을미]
화적연 기우제문
신령스러운 못 엉기어 빠지니 / 靈湫凝湛.
믓 물줄기 돌아 흘러 모이네 / 衆流攸匯。
구름과 함께 비를 내려주시니 / 與雲降雨.
응험은 있고 업신여김 없도다 / 有應無怠。
오늘 이 큰 가뭄 / 今茲大旱.
인민의 목숨이 거의 위태롭도다 / 民命其殆。
덕 잃음은 나에게 있으니 / 失德在予.
인민이 무슨 죄 있겠는가 / 赤子何罪。
정성은 자질구레하고 격식조차 갖추지 않았으니 / 微誠未格.
근심과 두려움 날로 더 하네 / 憂懼日倍。
많고도 큰 비 담은 단 못이여 / 庶霈甘澤。
이 굶주림에 은혜를 베푸소서 / 惠此飢餒。
이경석(1595~1671) 《백헌선생집白軒先生集》16 <무진년(1628) 5월 중신을 파견한 기우제문>에서

화강암의 침식과 화적연
화적연은 명성산 화강암(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을 뒤덮은 현무암층이 한탄강의 물과 모래, 자갈 등에 의해 깎여 지금을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화적연 주변에는 화강암, 현무암, 산성암맥, 유문암 등의 암석과 현무암 주상절리, 포트홀, 하식동굴, 포획암, 물이 흐른 방향을 알 수 있는 지형 등 다양한 지질 · 지형학적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겸재, 발길을 엄추고 붓을 들다
한국적 산수화풍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겸재 정선은 금강산 여행길에 만나게 된 아름다운 한탄강의 비경을 화폭에 담았다.
화적연은 영평 8경 중에서 첫손에 꼽히는 명승으로, 많은 문인들이 그냥 스치는 법이 없었으니 겸재 정선인들 그냥 지나쳤을까.
겸재 정선의 금강산 초행길에 그린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1747년 72세에 금강산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에 그린 작품인
해악전신첩에 담긴 화적연의 모습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금강산 가는 길목이었던 화적연과 영평팔경
포천(영평)은 조선시대 도성에서 강원도와 함경도 가는 최단 거리 노선인 '경흥로' 가 지나고 있었다.
경흥로는 원산과 서울을 잇는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형성되어 큰 고개 없이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꿈인 금강산 유람을 가기 위해 포천지역을 거쳐야 했으며, 한탄강 지역의 이름난 명승을 유람하였다.
금강산을 가는 여정 중 포천지역의 이름난 8곳의 경승지가 있었는데 이를 '영평팔경' 이라고 불렀다.
영평팔경은 화적연, 금수정, 창옥병, 낙귀정지. 청학동, 선유담, 와룡암, 백로주 등으로 화적연을 영평팔경 중 으뜸으로 꼽았다.
조선후기 영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은 금강산 유람기에 '화적연기'를 남겼고, 겸재 정선은 금강산가는 길에 명승을 그린 '해악전신첩' 에 화적연을 남겼다.
이외에도 조선후기 학자로서 이름 높았던 삼연 김창흡과 항일 의병장 면암 최익현도 화적연을 감탄하며 많은 글과 시를 남겼다.
겸재 정선 화적연

여의주를 품은 화적연
여기의 돌은 화적연 바위 안쪽에서 발견한 검은색 돌을 여의주 커럼 둥글게 가공한 것입니다.
화적연은 조선시대에 제일 마지막 순서로 국행기우제를 지냈던 영험한 장소이고 "용"에 대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는 곳입니다.
여의주에 소원을 빌고 소원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6사단 파로호(破虜湖)표석
1948년 6월에 창설된 육군 보병사단인 6사단(청성부대)이 6.25 전쟁 당시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낸 뒤 도망가는 중공군을 쫓아 화천댐 부근에서 섬멸하여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기념하고자 화천호의 이름을
'파로호(破膚湖오랑캐를 섬멸한 호수)' 라 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표석을 제작했다.
6사단은 6.25 전쟁 이후 사단 사령부를 포천시로 이전했으며, 이 곳(화적연)에 군 휴양소를 설치하면서 표석을 이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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