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영남길

탄천따라 - 대지교에서 구성역 플랫폼시티까지

나들나들 2024. 9. 14. 05:41


죽전동

정몽주 선생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고장

죽전동은 수지읍 소재지의 풍덕천 동쪽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본래 용인군 수진면(옛 수지면의 이름)의 지역으로서 큰 못이 있어 대지 또는 죽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바위, 점촌, 풍덕내 일부를 병합하여 죽전리라 해서 읍삼(구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1983호에 의하여 다시 수진면에 편입되었습니다. 이곳 지명 유래는 이곳으로부터 약 10리 되는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관계가 깊습니다. 당시 정몽주 선생의 시신은 개서 근처 풍덕이라는 곳에 모셔졌습니다. 19년 뒤인 1411년(태종11년 신묘) 선생의 고향인 경상도 영천으로 이장하기 위해 풍덕천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상여에 영정이 날아올라 지금의 모소에 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영정을 따라가 보니 가히 명당이라 여겨 여기다 모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몽주 선생을 모신 영정과 상여가 이 땅을 지나갔기에 만고에 충신을 사모하는 민초들에 의해 이곳의 지명을 죽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죽이란 대나무로 충신을 뜻하며 절은 마디가 있는 나무이니 역시 대나무라 충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말고도 정몽주 선생으로 인해 지명이 바뀐 곳이 선죽교입니다. 이곳은 처음 이름이 선지교였으나 선행 피살 후 죽자를 넣어 선죽교가 된 것입니다. 이후 어느 때부터인가 죽절이 죽전으로 변하였습니다. 죽전과 정몽주 선생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선조9년(1576, 병자년)에 선비들이 이곳에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서원을 세우고 죽전서원이라 했습니다. 이 서원은 선조 25년에 있었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선조 41년(1608)에 모현면 능원리에 다시 세워 충렬서원이라 했습니다.



제3길 구성현길 보정리 독정

선비와 느티나무와의 인연

큰 정자에서 시작된 독정의 유래와 의미 그리고 역사 현재 연원부락에 큰 정자와 보수원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곳을 '보정리'라 칭하게 되었다 합니다.

옛날 어느 날, 마을 앞에는 따로 큰 정자가 선비에 의해 지어졌는데 이씨 성을 가진 선비는 정자 밑에 움막을 짓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선비는 과거에 합격한 후 돌아가보니 노부모님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집은 폐가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갈 데 없는 이씨 선비는 과거공부를 하던 곳으로 돌아와 거처를 정하고 정착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이름도 홀로 서있는 큰 정자(느티나무로 추정) 나무와 인연이 되어 홀로 '독'자와 정자 '정'자를 사용하였으나, 일제치하에서 '독'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개명되어 행정명칭으로 두터울 '독'자로 고쳐 쓰게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마을 상류에 조선시대에 독을 만들던 가마터가 있어 독쟁이라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용인 구성역 플랫폼시티 45 (platform-city45.co.kr)

 

용인 구성역 플랫폼시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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