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삼남길

남태령 옛길

나들나들 2024. 6. 22. 19:22

남태령


서울과 과천의 경계


남태령 옛길


경기옛길 제 1길 삼남길 시작점

제1길 한양관문길
조선시대의 길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역사적 연결고리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조선의 길 이야기 조선시대, 한반도는 강력한 도로망으로 연결되어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도로망은 마치 시간을 건너 흘러온 문화와 역사의 터널 같았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중요한 외교적 과제였기에 의주대로라는 길이 중심 역할을 하였습 니다. 삼림 속을 헤치고 산을 넘어 중국과 조선을 잇는 길은 외교사절과 무역품들로 붐비던 곳이었습니다. 황금 양초들과 선물들이 의주대로를 따라 이동하며 두 나라의 우호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향하는 길, 영남대로는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길로서 사신들의 발자취는 두 나라 문화교류와 상호 이해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한편, 서쪽의 삼남대로는 서울과 남쪽 지방을 잇는 길이었습니다. 재래시장의 북적이던 소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행인들의 모습이 그 길을 수놓는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이 길은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를 잇는 길로서, 열심히 달리는 발걸음이 조선의 미래를 향해 가는 길 같았습니다. 이렇듯 조선의 모든 길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터를 밟으며 흘러간 그 발걸음은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고,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한반도를 빛냈습니다. 그 발걸음은 오늘날에도 그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 되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남태령 망루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이 된 사연
남태령은 과천시 관문체육공원을 지나 관문 사거리 쪽에서 서울 사당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원래는 여우고개라고 불리었으나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수원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에 이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이 고개의 이름을 물었더니 과천현 이방 변씨가 옆에 있다가 "남태령입니다.”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이때 “여우고개라는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이 있는데 어찌 거짓이름을 아뢰는 것이냐?”라고 옆에 있던 신하가 질책하니,
“임금님께 여우고개라는 속된 이름을 아뢰기가 민망해서,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게 되면 첫 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기에 그랬습니다.”
대답하므로 임금님께서는 변이방의 깊은 뜻과 즉흥적인 작명 실력을 높이 칭찬하고, 그 후부터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춘향전』의 내용 중에 이도령이 춘향을 찾아갈 때 “역졸을 거느리고 가만히 숭례문을 내달아 칠패·팔패·돌모루·백사장을 지나고 동작강 얼른 건너 남태령 뛰어 넘어 과천천에 이르니......” 라고 과천향토사에 수록된 구절을 보면 남태령은 이몽룡의 춘향을 향한 사랑의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일상의 공간들, 우리 마을이야기<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ncms.nculture.org


남태령 삼일운동 만세시위지

남태령 3.1운동 만세 시위지
사당으로 넘어가기 전 남태령 고개 정상에 올라서면 과천루가 세워져 있다. 과천루에 서면 좌우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감싸고 있는 과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과천8경중 제5경 남령망루(南嶺望樓)는 ‘남태령 망루에서 바라보는 과천’을 말한다. (*'과천루'는 안전상의 이유로 2020년 11월 현재 철거되었음) 관문 사거리에서 사당방향에 있는 남태령 옛길로 올라가기 전 과천동 남태령 제3공원에는 과천에서 3.1운동을 하였던 이복래 독립운동가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시위지의 표지판 크기가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과 얼에 비해 눈에 띄지 않게 작기는 하지만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남태령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과천면 주민이었던 이복래 등이 주도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이라고 한다. 이복래는 본래 시흥 출신으로 시위 당시에는 과천면 하리에 살았으며, 그는 서울에서 3.1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인근 주민들에게 3월 30일 오후 8시까지 남태령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주민들이 모이자 그들에게 손수 제작한 태극기 15개를 나누어 주었고, 이복래와 주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함께 과천 읍내로 행진하여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공립보통학교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일상의 공간들, 우리 마을이야기<지역N문화 테마 (nculture.org)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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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성 
'자신의 성품을 절제하라'


추사의 스승 완원이 평소 강조한 덕목을 김정희가 큰 글씨로 쓴 것


김정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김정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정희가 그린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김정희(金正喜, 1786년 6월 28일~1856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다. 조선국

ko.wikipedia.org


추사(秋史) 김정희④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을 스승으로 삼다

https://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32

추사(秋史) 김정희④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을 스승으로 삼다 - 헤드라인뉴스(HeadlineNews)

[한정주=역사평론가] 앞서 소개한 책에서 최준호씨는 “흔히 말하길 사람은 그 이름이나 명호의 의미대로 산다고 한다”고 밝히면서 김정희의 삶은 “추사의 의미를 따라 살았다”고 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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