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길 두물머리나루길 한음 이덕형선생
왜란을 극복한 조선중기의 문신
한음과 오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한음은 이덕형 선생의 호이고, 오성은 이항복 선생의 호입니다. 두
분 다 조선 중기의 명신이자 뛰어난 문장가였고, 어릴 적부터 절친하게 지내며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고 하지요.
하지만 둘의 나이 차이가 5살이나 난다는 점과 한음의 집안이 남인계통이고, 오성의 집안이 서인계통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일화둘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두 분이 모두 당쟁에 초월했고, 절친한 사이였던 것은 맞습니다.
1580년(선조 13년) 한음은 20세에 문과별시에 급제하고, 오성은 25세에 알성시에 급제하여 같은 해에 벼슬길에 오릅니다.
이때부터 두 분은 서로 같은 벼슬을 주고받으며 승승장구하지요.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피난을 호위하고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등 국난극복에 혼신을 다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한음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처형하려는 것을 반대하다가 삭탈관직 된 후 실의에 빠져 지내다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성이 찾아와서 곡을 하자 그때서야 한음은 눈을 감았고, 오성은 한음의 시신을 직접 염습해주기도 하였답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는 이덕형 선생의 묘역이 있습니다.
선생의 부인인 한산 이씨가 먼저 묻힌 이곳에 합장으로 장사지냈던 것이지요.
이 묘역에는 한음의 묘뿐만 아니라 신도비와 영정각도 있습니다.
영정각 안에는 한음의 전신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영정은 초상화가 이신흠이 이덕형 선생이 젊을 때인 1590년대에 그렸다고 합니다.
한음의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정각에 한번 들러 보세요.


한음 이덕형 선생 묘 및 신도비
漢陰 李德馨 先生 墓 - 神道碑
신도비는 한음 이먹형(1561-1613)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이다.
비석 받침은 네모나고 비석의 머릿돌은 용을 매우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이먹형이 세상을 떠난 40년 후인 조서 호중 4년(1653)에 세웠다.
조경이 비문을 짓고 오시복이 글씨를 썼다.
조선 선조 25년(1592) 일분군이 조선을 침입하자(임진왜란) 이먹형은 의교관으로서 일본 장수를 만나 일본의 잘못을 따지 물었다.
그리고 중국 명나라에 군사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여 조선이 명나라 군사와 함께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민심 수습과 군대 정비에 노력하였다.
이먹형은 조선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내는 등 나라의 증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다.
광해군이 이복동생인 영창대군과 그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내쫒으려 할 때 이에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용진머물며 나라를 걱정하다 병으로 죽었다.
이먹형의 묘는 신도비에서 약 300m 떨어진 산에 있다.




물은 흘러 온갖 근심 떠나보내고
구름은 복록福祿 따라 일어난다네
운길산은 중은동에 이웃해 있고
용진龍津은 월계月溪와 접해 있네
골짜기에 만발한 복사꽃 덤불
나그네 삶이러니 언제 또 볼까
- 한음 이덕형의「沙阜春帖」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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