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영남길

달래내고개길 첫 곳

나들나들 2024. 7. 12. 17:26

영남길 제 1길 달래고개길

한양에서 부산으로 가는 영남대로의 첫 관문!
이 길은 영남길 노선 중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첫 관문입니다.
슬픈 전설의 달래내고개와 한양으로 정보를 전달하던 천림산 봉수대를 시작으로 정계산 숲길, 조선시대 교통의 요중지였던 성남의 유적지를 모아놓은 판교박물관, 소각장을 전망대로 바꾼 판교크린타위를 뒤로하면 성남항일의병 기념탑과 통일신라 고려 고분이 있는 공원길로 들어서며 역사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청계산

명칭 및 유래
청계산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짐작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과천읍지’(1899년) 산천조에 청룡산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된다는 풍수설에 따라 청룡산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만 청계산이란 이름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우선“청계”라는 이름이 붙고 그러한 내를 지닌 산이어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이 산의 주봉은 망경대(望京臺)에서 흐르는 물줄기 하나가 서쪽 막계동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것이 한자식 표기가 莫溪淸溪인 점으로 미루어 내 이름에 따라 붙여진 산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청계산은 淸溪山외에 淸鷄山ㆍ淸淸山 등으로도 나오지만 이는 기록한 이의 잘못이 아닌가 여겨진다.
역사
청계산 북동쪽 기슭은 신사시대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로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고려 멸망 후 이색, 길재, 조윤 등 고려 유신들이 은거했던 곳으로, 청계산의 주봉을 망경대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가 망한 뒤 고려 유신 조윤이 청계산 정상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는 데서 유래하고 조선 말기에는 노년의 추사 김정희가 긴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부친의 여막을 지키면서 살았던 곳이다.
소개
청계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성남시ㆍ과천시ㆍ의왕시의 경계에 따라 위치해 있으며 과천에서 동남쪽으로 5㎞, 안양에서 동쪽으로 12㎞, 서울에서 18㎞의 거리를 두고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3.7㎢, 평수로 환산하면 112만평이고 매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경기도 청계산지역과 동쪽의 서울특별시 청계산지역으로 구분됩니다.
산세는 서남쪽으로 의왕시에 소재한 백운산ㆍ모락산ㆍ오봉산으로 뻗쳐 있고, 서북쪽으로 과천시 옥녀봉 자락과 이어져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계산은 국사봉(540m), 망경대(618m), 청계산(583m) 및 옥녀봉(375m)을 이어 남북으로 달리는 능선과 국사봉을 정점으로 하여 동서방향으로 달리는 능선이 만나 T자형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곡은 이와 같은 T자형 능선을 기점으로 하여 동서방향과 남쪽방향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청계산의 모암은 호상흑운모편마암과 세립질편마암이 각각 약45%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우백질편마암, 화강암질편마암, 산성암맥 및 석회암이 국지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저지대의 경작지 인접지역에는 충적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암의 특성상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깊이가 깊고 입자가 고운 갈색 산림토양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의 남쪽관문에 위치해 있어 서울로 상경하는 시민들에게 녹색의 푸르름을 안겨 도시의 삭막함을 절감시켜주며 연간 이용자수가 500여만명으로 휴일에는 6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어 도시지역에 대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고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서 애용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많이 찾고 이용함으로써 청계산의 자연생태계를 점차 약화시키고 있어 입산통제구역, 산불조심 기간 중 통제구역, 안전사고 위험지역 등 출입금지 구역에 대한 탐방객 스스로의 인식과 자제가 필요합니다.
연혁
1971년 8월 6일 : 건설부고시 제465호로 미시설 도시자연공원인 청계산 자연공원으로 지정

청계산 소개-서초구청 (seoch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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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길 달래내고개길

달래내 고개이야기
역사와 설화가 전해지는 고갯길
역사, 전설, 문화가 얽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
"달래내 고개"는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위치한 특별한 지명으로, 그 독특한 이름과 역사적인 배경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고갯길은 월천현, 오현, 천천령, 천천현, 림령, 달이내고개 등으로도 불리며, 이러한 이름들은 이곳의 지리적,특성과 역사적인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헌인릉과 한양의 지맥을 보호하기 위해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의 주장에 의해 이 고개의 통행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 당시의 사상과 문화가 어떻게 지리적인 특성과 결합되어 표현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이곳에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서낭당 주변에 전해지는 달아와 달오 남매의 설화 역시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고 있습니다만 달래내 고개의 이름과 관련된 정확한 근원 설화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국방 통신 유적인 전림산 통수터가 이곳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값진 유산입니다. 이렇게 달래내 고개는 역사, 전설, 문화가 얽힌 곳으로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엿보는 창으로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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