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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성지

나들나들 2024. 10. 31. 19:48

 

천주교 수원교구 은이성지

 

천주교 수원교구 은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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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성지

은이 마을은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모여 살게 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서, 은이란 글자 그대로 '숨어 있는 마을' 이란 뜻이다.

은이 성지는 1836년 1월 13일, 프랑스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모방(Maubant) 신부가 그 해 4월경 이곳을 방문하여 당시 15세인 소년 김대건(1821~1846)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한 곳이다. 성지 내 김대건 기념관 앞 옛 은이공소지로 전해지는 곳에 소년 김대건이 세례받는 형상의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김대건 (안드레아)은 7월 11일 서울 모방 신부 댁에 도착하여 이미 선발된 동료 최양업(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과 함께 라틴어를 배우다가, 12월 3일 중국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8년 뒤인 1844년 12월 초에 최양업과 함께 만주의 소팔가자 성당에서 부제품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제3대 조선 교구장인 페레올(Ferreol)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는 1845년 10월 12일, 교구장 고 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를 모시고 강경 황산을 통해 귀국하여, 11월 경부터 1846년 부활대축일까지 약 6개월 동안, 은이 공소에서 기거하면서 서울과 용인 일대 교우들을 사목하였다. 그러므로 은이 성지는 사실상 김대건 신부의 본당 역할을 한 곳이며, 그의 땀과 신앙이 배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풍성하게 열렸던 곳이 은이이다. 즉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산너머 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이곳에서 미리내 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험한 고개 셋이 있는데, 이 고개는 김대건 신부 생전에는 그가 걸어서 넘나들던 사목활동 행로였고, 순교 후에는 그의 유해가 옮겨진 경로가 되었다. 옛부터 교우들은 이 고개를 신덕고개(은이 고개), 망덕고개(해실이 고개), 애덕고개(오두재 고개)라고 부르며, 지금껏 도보 순례를 하면서 그의 고귀한 순교 신앙 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1925년 7월 25일에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II 세에 의해 서울에서 시성되었다.

 

2016년 9월 16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70주년에 조금하여 새 성진을 봉헌하며

은이 성지위원회

은이 김대건 신부 현양위원회


은이성지 隱里聖地 Euni Sanctuary

은이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세요, 순교자인 성 김대건, 131-1846 안드레아 신부가 1836년 모방 Maubant 신부에게 세레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로 사제 성소의 열매가 맺어진 자리이다. 1845년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순교 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즉 은이성지는 김대전 신부의 성장(산 너머 골배마실),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후 사목활동의 직접적인 장소로서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은이'는 (조선시대 고지도에 '언리', '어은리', '은리'등으로 표기되었다) '숨겨진 동네', '숨어 있는 마을'을 의미하는데, 이곳에 박해를 피해 숨어 살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로서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후 은이는 지역 신앙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유서 깊은 신앙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이 2001년 상해 정부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철거되자, 철거 직전 성당에 대한 실측을 실시하고 기둥과 대들보 동 일부 부제를 가져와 2016년 9월 이곳에 김가항성당을 복원하였다.

은이성지와 관련있는 성인:

성 김대전 안드레아 신부,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 나모방 베드로 신부, 성 한이형 라우렌시오


제 6길 은이성지•마애불길 은이성지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
김대건 신부가 어린시절 신부의 꿈을 키웠던 천주교 마을 은이는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천주교 관련 장소 중 하나입니다. 은이는 천주교 박해 시기(19세기)에 숨어 사는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대건은 이곳에서 자란 소년으로, 그의 신앙 경험도 은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천주교 신앙 을 익히고, 나중에 신부가 되어 사제성소를 세우는 꿈을 키웠습니다.
은이는 그런 김대건과 같은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던 곳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은이에서 숨어살던 천주교 교우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기를 구워서 생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은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처음으로 미사를 드린 성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장소에서 믿음을 지켜나가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으로 기억됩니다. 현재 용인시에서 조성한 청년 김대길의 출발지이기도한 천주교 성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