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방문자여권투어/백제 고도의 길

신록이 아름다운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나들나들 2026. 8. 8. 22:27

'춘(春)마곡’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은 나무와 봄꽃들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 마곡사 소개글 中  

태화산에 위치한 마곡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태화산마곡사 사적입안』(1851년)에는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귀국 후 선덕여왕의 후원을 받아 세운 7대 가람 중 세 번째 사찰로 창건 이후 다섯 번의 중수(重修)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교양종대본산마곡사 연기략초』 에서는 “보조선사 체징이 마곡사를 창건하고 그 후 범일국사, 도선국사가 확장과 중수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신록축제가 열릴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쪽은 수행 공간인 남원이고 다른 한쪽은 예불 공간인 북원이다. 남원의 대표적인 전각이자 수행 공간의 중심인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영산(靈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이 산을 사찰 내에 옮겨놓은 공간이 바로 영산전이다. 북원의 대표적인 전각인 공주 마곡사 대웅전은 내부가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이며,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년)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라마탑과 비슷한 이 유적은 고려 후기 원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라마교 문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한 마곡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유명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승을 대대로 배출하였으며, 오늘날까지 화승들을 추모하는 불모다례제를 행하고 있다.

 

  • 위치 -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 문의 - 041-841-6221
  • 시간 - 하절기(3~10월) 09:00 ~18:00 / 동절기(11~2월) 09:00 ~17:00
  • 스탬프 - 마곡사 5층 석탑 앞 (템플스테이 사무소 앞)
  • 관람료 -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magoksa.or.kr/
  • 가는방법 - 공주종합버스터미널 하차 → 일반 버스 ‘종합버스 터미널(신관초 방면)’ 정류장에서 771번 버스 승차 → 마곡사 정류장 하차 → 도보 20분 이동
 

대한민국관음성지 마곡사

 

www.magoksa.or.kr



해탈문


法界로 들어가는 해탈문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입니다.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태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즉 법계(法界) 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 문인 마곡사 천왕문이 박공지붕집인 데 비해 해탈문은 추녀 밑에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 맞춘 도구를 여러 개 배치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입니다.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모두 판장 벽으로 막았습니다. 공포(拱包)는 3제공 형식으로, 제공 조두형(鳥頭形) 돋을새김을 하고 있으며 제공에는 연꽃을 조각하였습니다.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편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및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오층석탑

나라의 기근 막는 오층석탑

대광보전 앞에 위치한 오층석탑은 국보로,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부릅니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 등이 조 성되어 있습니다. 라마식 보탑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원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 이기도 하므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불에서 과거불과 미래불이라는 삼세불로의 확대는 시간을 횡으로 가르고 다시 공간적으로 투영되어 사방(四方), 팔방(八方), 시방(十方)에 현재불이 등장함으로서 현재의 다방불, 천불, 삼 천불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은 상태에 있다는 내재불 사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오층석탑에는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 내 려오고 있습니다.


대광보전


앉은뱅이 업장 소멸한 대광보전

앉은뱅이,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처님의 자비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세세생생 회향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날은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광명을 얻게 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 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업보가 그 얼마나 큰데 감히 부처님께 그런 소원을 빌다니! 얼마나 더 공덕을 쌓아야 그 동안 지은 억겁의 죄업을 다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
지난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 될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부처님의 자비를 회향하겠노 라고 다짐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삿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 그는 그 파란 하늘과 푸른 숲, 무심히 흐르는 마곡천을 바라보며 부처 님의 자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또 다짐했다. 이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숲,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에게 회향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나누는 삶, 자비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대웅보전


아들 점지해 주는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대웅보전!

무슨 말이냐구요?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설화의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지요.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합니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있습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아낙이 많아서이지요.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은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릅니다.